본문 바로가기

기억

연극 아마데우스 아마데우스는 '신에게 사랑받는 자'라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의 이름 뒤에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이름이 있다. 질투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살리에리'라는 이름이다. 이 연극은 바로 그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사실 살리에리는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음악은 모든 이에게 칭송받고, 그는 황제의 신임을 받으며 궁정악장이라는 견고한 지위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등장하면서 모든 게 달라진다. 자유분방하고 순수하고 본능에 충실한 모차르트. 인간적인 면으로만 보자면 고개를 젓게 만드는 그이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만은 다르다. 마치 신에게서 들은 음악을 곧바로 써내려가는 듯한, 완벽한 아름다움. 살리에리가 갖기 위해 경건하고 .. 더보기
우아한 가난의 시대 소확행, 시발비용, 탕진잼, 욜로... 소비와 관련된 이같은 신조어들은 계속해서 쏟아져나오고 있고, 아마 그건 소비 행태가 트렌드와 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떠올려보면, 그냥 길을 걷다가도 멋지게 우뚝 솟아오른 아파트를 보고 '생전에 서울에 집 한 채는 살 수 있을까' 하기 일쑤다. 그러고보니 오늘도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다 눈앞의 아파트를 보고 '저 아파트 한 채만 있었으면 좋겠다' 했고, 그래서 사무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한결 더 무거워졌다. '로또에 당첨되자'라거나 '중국 재벌과 결혼하자' 따위의 현실감 없는 농담은 현실만 더 무겁게 한다. 그렇게 가기 싫은 사무실로 돌아가 수십 년을 일만 한다 해도 아마 회사 옆 아파트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삶은 진짜 .. 더보기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Happily) Ever After 열정적 사랑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사랑은 변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고, 혹은 변한 사랑에 상처받았을 것이며, 나 역시 그렇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을 통해 사랑은 지속되는 것임을, 단지 열정이 아니라 기술임을 말한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27p.) , 에서 그랬던 것처럼, 작가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는 한편으로 군데군데 그들의 심리와 사랑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들을 넣는다. 특히 이 책의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작가는 그들이 유년기에 겪은 환경으로 인한 그들의 심리 상태를 주목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라비는 바람 하나 들지 않는 꽉 닫.. 더보기
주식하는 마음 최근 주위가 주식 얘기로 들썩들썩하다. 평소 그런 것엔 관심이 전혀 없지만 친구들이 너도나도 주식 이야기를 하니 슬슬 나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내 이런 반응에 이제 주식을 뺄 때가 되었다는 고려를 심각히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전에 이미 멋모르고 코인 샀다가 폭망한 기억도 있고(빼지도 못하고 강제 존버 중이었는데 요즘 다시 오르는 중이라서 존버는 승리한다 외치는 중) 일단 공부를 선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제 신문 읽기부터 시작하고, 책으로 공부를 해볼까 하는 참에 친구가 추천해준 책이 바로 . 처음에는 그냥 그런, 주식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라고 주관적인 생각을 풀어놓은 책(그런 책에 약간 거부감이 있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저자는 경제학, 심리학 등 다양한.. 더보기
굿 윌 헌팅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 한다. 상처를 숨기고, 내가 이만큼 강인하고 멀쩡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려 다른 나를 전면에 내세운다. 실은 나는 더 상처 받는 게 두려워 가시를 세운 연약한 고슴도치이면서도 가시가 바로 나인 것처럼. 나를 감추기 위해 타인을 상처 입히고, 그러면서 이게 진정한 자신이라고 자신마저도 믿어버린다. 윌 헌팅은 천재이다. 어릴 적 여러 번의 파양과 양부모로부터의 학대로 상처가 가득한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폭력과 방탕한 나날을 즐긴다. 그의 천재성은 스스로 그리고 친구들도 알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현재에 만족한다. 어느날 그가 청소부로 일하던 MIT 복도 칠판에 적힌 수학 난제를 푸는 그를 램보 교수가 발견하고, 우연한 기회로 유치장에.. 더보기
블라인드 진정한 사랑은 눈을 멀게 하지. 스포 많음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고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는 도련님 루벤. 어느날 그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마리가 오게 된다. 마리는 그에게서 도망가지 않고 그를 찍어누르고, 루벤은 마리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 마리는 남에게 자신을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영화에는 마리가 어려서 어머니에게 받았던 폭언과 폭력들이 조각조각 나타난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영화 초반부에 마리가 읽어주는 속의 거울 조각이 생각났다. 사람들의 눈과 심장에 박혀 세상 모든 것을 미워보이게 만들고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 거울 조각.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박아넣는 혐오의 조각은 그보다 훨씬 날카롭고 깊은 상처를 남기곤 한다. 마리는 루벤에게 거짓말을 한다. 주로 자신의 외모에 대한 거짓말이다. .. 더보기
경애의 마음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본 사람들은 그 공백으로 서로 이어지는 걸까. 상수. 부장대리라는 애매한 직급을 가진, 본인은 부정하고 싶어하지만 국회의원 출신인 아버지의 인맥 덕에 겨우 회사에 붙어 있는 인물. 그루밍에 관심이 많고 ‘일반적인 한국 남자’들의 생활에 잘 끼어들지 못하는, 그럴 때마다 말이 길어질 것 같으면 ‘군대 면제에요’를 모든 일의 해답인 양 내세우는 인물. 그는 ‘언니는 죄가 없다’는 페이지를 운영하며 수많은 여성들의 익명의 고민을 듣고 공감해주는 걸 가장 큰 보람으로 삼는다. 경애. 파업을 주도했다고 해 회사에 미운털이 박혔으나 엄마의 건강 문제로 다른 동료들처럼 회사를 떠나지 못하고 회사로 돌아온 인물. 회사는 그녀를 총무과로 보내 보란듯 숱한 비품들처럼 창고에 쳐박아놓았고, 팀원을 달라는.. 더보기
200430-0502 통영 (1)서피랑, 케이블카, 달아공원 통영은 재작년이었나, 친한 선배가 근무하고 있을 때 후배들과 함께 잠시 가본 적이 있다. 그때도 동피랑 마을을 가거나 케이블카를 타긴 했었는데(케이블카를 탔던 사실도 잊고 있었다. 이번에 케이블카 줄을 서다가 기시감에 생각해보니 그랬더라.) 본격적인 여행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엠티 같은 느낌이었지. 그러던 곳을 올해 여행으로 가게 되었다. 여행 삼아 통영을 가는 일은 생전 처음이었다. 부산에서 오래 살았는데도 그랬다. 희한한 일이다. 가까울 땐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들이 멀어지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실은 프리미엄 버스를 타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프리미엄 버스는 배차 간격이 길었다. 아침 일찍 우등버스를 타고 통영으로. 전날 술을 마시고 늦게 잔 덕에 눈 감았다 뜨니 통영이었다. 오후 한 .. 더보기
190629-0706 몽골 홉스골 투어 (3)홉스골, 다시 울란바토르 DAY 4 : 드디어, 홉스골 어제 너무 늦게 도착해서 정신이 없었지만 아침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우리 여행의 가장 주요한 목적지가 홉스골인데 이곳에서의 시간이 고작 하루밖에 남지 않은 거다. 계획대로라면 전날 오후엔 도착했어야 하는 곳인데. 그래서 아침을 먹기 전 짬을 내서 잠시 산책. 몽골인들은 홉스골을 바다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근데 이 규모를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나도 그런데 내륙에 사는 이들은 더하겠지 싶었다. 겨울이 되면 이 광활한 호수가 꽁꽁 얼어 걸어서 건너다닐 수도 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자연의 신비에 감탄. 아침을 먹으며 친구가 얘기하길, 오늘 강수 확률이 오후 내내 70~90이라고 했다. 그런데 바깥 하늘은 맑고, 우리 가이드도 비가 올 것 같진 않다고 해서 몽골 기상청도.. 더보기
190629-0706 몽골 홉스골 투어 (2)어기호수 - 볼강 DAY 3 : 어기호수 - 볼강 (부제 : 조난의 시작) 이날은 사실 정말 별거없고 이동만 하는 날이었다. 그래도 차 세우기만 하면 내려서 열심히 사진 찍는 열정이 남아 있는, 실투어 2일차. 이날은 전날과는 달리 푸르공이 유독 심하게 덜컹거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전날은 대부분이 포장도로이고 이날은 오프로드이기 때문이었겠지만, 돌이켜보면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저씨는 유독 자주 차를 세우고 앞 왼쪽 타이어를 쳐다보곤 하셨고, 우리는 그냥 그런갑다 하고 그때마다 신나게 사진을 찍어댔다. 이날따라 점심이 늦어졌다. 굉장히 한적한 마을에 들어섰는데, 사람이 많고 식당이 막 열어서 점심 준비에 시간이 꽤 걸린다고 가이드가 그랬다. 이 마을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한 마을이라는데, 마을 이름이 '좋..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