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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연뮤

연극 아마데우스

 아마데우스는 '신에게 사랑받는 자'라는 뜻이다. 우리에게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의 이름 뒤에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이름이 있다. 질투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살리에리'라는 이름이다. 이 연극은 바로 그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사실 살리에리는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음악은 모든 이에게 칭송받고, 그는 황제의 신임을 받으며 궁정악장이라는 견고한 지위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등장하면서 모든 게 달라진다. 자유분방하고 순수하고 본능에 충실한 모차르트. 인간적인 면으로만 보자면 고개를 젓게 만드는 그이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만은 다르다. 마치 신에게서 들은 음악을 곧바로 써내려가는 듯한, 완벽한 아름다움. 살리에리가 갖기 위해 경건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지속하면서도 단 한 번도 써내지 못하는 그런 음악을 모차르트는 가지고 있다. 더 큰 비극은, 살리에리는 그런 재능은 가지지 못했으나 그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귀는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절규하는 살리에리의 모습은 신에게 농락당한 가련한 인간 그 자체이다.

 

당신은 나의 영원한 적입니다. 영원한 적.

 

 그러나 살리에리는 신의 장난 앞에 그저 무릎 꿇고 울지만은 않는다. 1막의 마지막에서, 모차르트의 악보를 보며 절망하고 신을 원망하던 그는 긴 독백 끝에 마침내 신을 적이라고 선언한다. 목에 걸고 있던 십자가를 끊어 내던지며. 그리고 2막에서는 신을 대신하여, 신의 아들인 모차르트를 향한 그의 집요한 복수가 시작된다. 모두가 모차르트에게 등을 돌리게 만드는 와중에도 자신은 그의 아름다운 음악을 탐하는 모습은 참 섬뜩하고 탐욕스러워 보였다. 간절히 갈구하는 이는 가지지 못하는 음악. 갈구했으나 가지지 못하여 그를 시샘하는 이만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그 음악을 온전히 들을 수 있는 귀. 얼마나 아이러니한 짝인지.

 모차르트는 죽어간다. 이 천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음악적 재능 그뿐이다. 어릴 적부터 늘 구름 속을 걸어온 이 천재는 현실의 땅에 발을 딛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가 죽고 그의 아내가 떠난 후로는 더욱 그렇다. 그는 철저히 혼자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평생 무서워한 아버지의 형상을 빌어 그에게 레퀴엠을 의뢰하고, 레퀴엠을 통해 모차르트를 더욱 압박해간다. 그의 목을 조른다.

 기력이 다해가 마지막 의뢰인 레퀴엠을 쓸 힘조차 없는 모차르트를, 살리에리는 다시 찾아간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에게 자신의 음악을 대신 받아써달라는 부탁을 하고, 살리에리는 그에 응한다. 모차르트가 쏟아내는 음악을 받아적는 살리에리. 처음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 천천히, 를 말하였으나 점차 음악을 이해하고 그 음악이 머릿속에 울리자 희열에 가득차 쉬어가자는 모차르트를 재촉해댄다. 살리에리로서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을 것이다. 신의 음악이 머릿속으로 바로 쏟아져 들어오는 그 느낌. 살리에리는 그 순간 아마 신의 아들이 된 듯한, 그런 기분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살리에리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었고, 눈앞에는 바로 그 선택받은 신의 아들이 죽어가고 있다. 바로 살리에리의 손에 의해서. 그의 대사처럼, 이 레퀴엠은 자신의 영혼을 위한 장송곡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살리에리의 마음 속 아직 죽지 않은 양심이 꿈틀대고,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용서를 갈구한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끝내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 

 사실 이 장면에서 나는 또 다른 신의 아들, 즉 예수를 떠올렸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고통받는 그는 끝내 인간들을 용서하며 그들의 죄를 사하기 위해 죽어가지 않는가. 그러나 모차르트는 그렇지 않았다. 살리에리를 용서하지 않은 채 가련히 죽어간다. 찬란한 재능을 가졌으나 그 역시 인간일 뿐이었을 테니.

 

 시간은 흐르고, 이제 늙은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소문에 휩싸인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기뻐한다. 그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영원히 남을 것을 아는 귀를 가진 사람이므로. 그렇기에 그의 이름 뒤에 숨어 자신 역시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을 알므로. 그 순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영영 그렇게 남으려 하........였으나 죽음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마치 신의 조롱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신에게 사랑받는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잠시간 승리에 도취되었으나 그의 인생은 여전히 신의 손아귀 안에 있다는 듯.

 어찌되었든 죽음에서 살아남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젊고 영광스러웠던 모습으로 돌아가 우리 모두에게 말한다.

 

당신이 지독한 실패를 느꼈을 때, 자비라고는 없는 신의 조롱을 느꼈을 때, 내 이름을 부르세요, '안토니오 살리에리'. 평범한 자들의 수호자, 내가 용서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살리에리는 끝내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다. 그렇기는커녕 끝까지 신에 의해 조롱당한다. 죽음까지도. 그러나 그는, 조롱당하고 용서받지 못하고 철저히 타락한 그는 우리를, 그와 같이 평범한 운명을 타고난 우리 모두를 용서한다. 선택된 이에게만 눈부신 선물을 주는 신 대신, 선택되지 않은 우리 모두를 위한 신이 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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