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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여행

200430-0502 통영 (1)서피랑, 케이블카, 달아공원

통영은 재작년이었나, 친한 선배가 근무하고 있을 때 후배들과 함께 잠시 가본 적이 있다.

그때도 동피랑 마을을 가거나 케이블카를 타긴 했었는데(케이블카를 탔던 사실도 잊고 있었다. 이번에 케이블카 줄을 서다가 기시감에 생각해보니 그랬더라.)

본격적인 여행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엠티 같은 느낌이었지.

 

그러던 곳을 올해 여행으로 가게 되었다. 여행 삼아 통영을 가는 일은 생전 처음이었다.

부산에서 오래 살았는데도 그랬다. 희한한 일이다. 가까울 땐 매력적이지 않았던 것들이 멀어지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실은 프리미엄 버스를 타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프리미엄 버스는 배차 간격이 길었다.

아침 일찍 우등버스를 타고 통영으로. 전날 술을 마시고 늦게 잔 덕에 눈 감았다 뜨니 통영이었다.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서피랑 떡복기집'이었다. 

그냥 지나칠 뻔한 것을, 사람이 복작거리고 있어서 단박에 찾아낼 수 있었다.

내부는 협소하다. 세 테이블 정도. 가게 앞에 잠시 차를 대고 테이크아웃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다행히도 나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다.

떡볶이 1인분과 모듬튀김 1인분을 주문했다. 가격은 5천원이고, 2인세트? 로 팔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양이 많지 않은 내가 깨끗이 다 먹어치운 걸로 봐서 진짜 2인이 와선 모자랄 것 같다.

 

아, 다른 건 몰라도 닭튀김은 꼭 먹어야 합니다.

 

 

 

가게에 앉아 있으니 본의 아니게 주인 할머니가 손님들과 나누는 대화도 들렸다.

친구 딸인 듯한 손님이 찾아와서 반갑게 저 누구예요~ 인사했더니 정겹게 반겨주는 대화 같은 것들.

뻘하지만 그 대화가 정겨웠다.

또 할머니 두 분 중에(한 분이 사장님, 한 분이 도와주시는 분 같았는데) 한 분이 요즘 애들은 다들 와서 할머니~ 한다구 투덜댔더니 다른 한 분이 나는 할머니 소리가 그렇게 좋다고, 아까 조그만 꼬마애가 와서 '이모' 하길래 '할머니' 하라고 했다던가.

그냥, 희한하게 정겨웠다.

 

 

 

 

곧바로 서피랑 마을로 갈까 하다가 충동적으로 충렬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충렬사에는 멋진 나무들도 많이 있었다. 다만 지금은 코로나 영향으로 유물전시관은 운영하지 않는다.

 

 

 

 

여기 정자에서는 통영의 지붕들을 볼 수 있다.

 

 

 

충렬사를 돌아보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곧바로 서피랑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런 벽화를 만나니 서피랑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서피랑은 초입인 99계단부터 통영의 대표 작가 박경리 선생님의 이미지를 많이 쓰고 있다.

작년에 토지를 읽으면서 내내 감탄했었는데.

서피랑에서 볼 수 있는 박경리 선생님의 이미지들을 보면서 괜히 숙소에 돌아가면 박경리 선생님 글을 읽어야지 했지만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이게 쑥부쟁이던가 구절초이던가... 음악계단 가는 길에 만난, 뜻밖의 예쁜 꽃들 / 바다와 아파트가 함께 보이는 통영의 뷰

 

 

짐을 숙소에 풀지 못해 낑낑대며 올라왔지만, 고생 끝에 만난 풍경은 멋졌다.
통영을 한국의 나폴리라고들 하는데, 적어도 '한국형 나폴리'는 맞는 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본디 '돌아와요 충무항에' 였다고 한다.
이 앞에 서면 노래도 한 가락 흘러나온다.

말뚝박기하는 아이들 형상과, 개울 페인팅이 있던 계단
파란 하늘과 노란 벽이 잘 어울렸다

 

햇볕이 쨍쨍하고 백팩은 무거워서 더웠다. 짐을 풀러 숙소에 들렀는데, 한번 누우니 도무지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다음에 무얼 해야될까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케이블카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운행 시간이 있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케이블카 대기는 200명 정도가 있었지만 줄이 빨리 빠졌다.
운행 시간 내에 타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다만 나는 혼자이고 가족 단위의 팀과 함께 타게 되어 굉장히 뻘쭘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구석에 웅크리고 사진도 맘껏 못 찍었다.

 

아래와 같은 구도만 겨우 찍을뿐...

 

 

케이블카 도착지 바로 위의 전망대만해도 이미 경치가 멋졌다.
그러나 나는 미륵산 전망을 올라가보기로 한다.
무거운 백팩 메고 서피랑도 다녀왔는데, 이젠 홀가분하니까 그정도야!

 

미륵산 올라가다 본 거북선 모양 돌탑이랑 귀여운 케이블카 모형

 

 

미륵산 정상을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멈춰서서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게 됐다. 와, 진짜 멋지다, 탄성을 지르며.

멋있으니까 사이즈 안 줄인다..!

 

다시 돌아온 전망대. 아마 이 고양이 급식소는 전국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급식소 중 하나일 것이다.

 

 

슬슬 해가 넘어가려 한다.
원래는 오늘 이순신공원을 보려고 했었는데, 그건 나중에 동피랑이랑 같이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쩔까 고민하다, 너무 멀어서 가지 않으려 했던 달아공원엘 가기로 했다.

 

택시 기사님은 문화해설사마냥 통영 이곳저곳을 설명해주셨다.
"아름답죠?"라는 말을 말끝마다 붙여가며.
기사님 말씀을 듣다 문득 깨달았는데, 기사님의 억양은 완전한 전라도의 그것이었다.
이 고장에 대한 깊은 자부심을 느끼면서 당연히 토박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사님한테 들은 말 중 제일 인상깊은 게 '가는이고개'에 관한 거였다.
<전설의 고향>에도 몇 번 나왔다나.
요약하면 남편이 주모랑 바람이 나서 아내를 죽였고, 시체조차 수습하지 않아서 아내가 귀신이 되어 행인들을 '가는 이~' 하며 잡는다는 거였다.
그래서 마을 사또가 무슨 일인가 귀신을 만나 물어 그런 사연을 알게 되었는데, 그 귀신은 또 주모와 남편이 자신의 아이를 너무 훌륭하게 키워줘서 처벌은 바라지 않는다고 했단다.
그리하여 사또가 죽은 아내의 시체를 잘 수습해주어 더 이상 귀신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여튼 기사님 말씀을 경청하다보니 금세 달아공원에 도착했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낮엔 날씨가 참 좋았는데, 어느새 구름이 꽤 많이 껴서 해가 넘어가는 건 못볼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는 길에 들은 기사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오늘의 해넘이는 365일 중 오늘 단 하루만의 아름다움인 거라고. 이런 구름 모양, 바람, 하늘색은 다신 없을 거라고. 

그 말을 생각하며 보았더니 구름 새로 햇살이 뻗내는 빛줄기가 참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수평선에 짙게 깔린 구름이 도무지 해가 완전히 넘어가는 것을 못볼 성싶어서 내려오는 길.

생각 없이 본 주차장 쪽에서 빨갛게 해가 다시 얼굴을 드러내는 걸 보았다. 이런 우연한 마주침이라니.

 

사실 낮엔 더웠는데 오래 밖에 앉아있다 보니 으슬으슬하고 콧물이 나는 기분.
그래서 저녁은 따끈한 해물뚝배기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점 찍어둔 식당은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손님이 북적거렸다.
근처에 있는 적당한 식당엘 들어가서 물회를 주문했다.

 

서빙 해주시던 분께서 혼자 여행 왔냐고, 요즘 친구들 대단하다는 한 마디를 붙였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는 생각보다 '혼자 왔어요? 대단하네' 이야기를 많에 들었다.)

 

역시 물회는 밥을 말아먹는 게 꿀맛이다.
따끈한 쌀밥과 시원한 물회의 조화가, 수식어가 아니라 진짜 꿀맛처럼 달다.

 

 

 

숙소는 충무교 바로 근처에 있었다. 해저터널을 지나 천천히 걸어가기로 한다. 그러려고 근처 식당으로 오기도 했고.

 

일부러 바다와 다리, 야경이 보이는 숙소를 잡았고 실제로 낮에 체크인하고 그 광경에 감탄했지만,

막상 밤에 숙소에 들어가니 딱히 야경을 보게 되진 않았다.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피로와 알코올에 취해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