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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영화

굿 윌 헌팅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 한다. 상처를 숨기고, 내가 이만큼 강인하고 멀쩡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려 다른 나를 전면에 내세운다. 실은 나는 더 상처 받는 게 두려워 가시를 세운 연약한 고슴도치이면서도 가시가 바로 나인 것처럼. 나를 감추기 위해 타인을 상처 입히고, 그러면서 이게 진정한 자신이라고 자신마저도 믿어버린다.

 

 

 윌 헌팅은 천재이다. 어릴 적 여러 번의 파양과 양부모로부터의 학대로 상처가 가득한 그는 친구들과 어울려 폭력과 방탕한 나날을 즐긴다. 그의 천재성은 스스로 그리고 친구들도 알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현재에 만족한다. 어느날 그가 청소부로 일하던 MIT 복도 칠판에 적힌 수학 난제를 푸는 그를 램보 교수가 발견하고, 우연한 기회로 유치장에 갇힌 그를 자신의 연구를 돕는 조건으로 가석방시킨다. 조건 중 하나인 심리 상담을 받게 하려고 여러 교수를 만나보지만 천재에다가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려 단단히 가시 세운 그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결국 램보는 자신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심리학 교수 숀을 찾아간다.

 

윌과 숀의 두 번째 만남

 

 숀과 윌의 첫만남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윌은 숀의 가장 아픈 부분인, 사별한 아내에 대한 점을 찾아내고 공격한다. 숀은 상처받고, 윌에게 크게 화를 낸다. 그러나 그는 단번에 윌을 포기하지 않고 다음번 윌을 만나 자신이 그때 느낀 상처와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말한다. 윌에게는 책을 통한 지식이 많을지 모르나 경험은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윌의 단단한 껍질 중 한 겹을 벗겨낸다.

 

 이 초반부에서는 내내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에 감탄했다. 극적이거나 과장된 것이 없는데도 그 눈빛으로 그가 품은 깊은 마음, 상처, 공허함, 그런 게 너무 잘 보였다.

 또 하나 생각한 점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렇기에 그 행동을 통해 신뢰를 끌어낼 수도 있다는 점. 윌과 숀의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진 것은 숀의 그런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며 윌이 부러웠던 부분은, 그의 천재성보다는 그가 가진 사람들이었다. 숀이라는 인생의 멘토뿐만 아니라 조건 없이 그를 받아들여주고 사랑해주는 여자친구 스카일라, 그리고 그와 함께 있음이 행복하지만 윌의 빛나는 천재성으로 그가 가질 수 있는 더 빛나는 인생을 위해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 다른 길로 보낼 수 있는 친구 처키의 존재가 그랬다.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언젠지 알아? 내가 너희집 골목에 들어서서 네 집 문을 두드려도 네가 없을 때야, 안녕이란 말도, 작별의 말도 없이 네가 떠났을 때라고. 적어도 그 순간만은 행복할거야."

 

 '윌의 사람' 이야기를 하려니 램보 교수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네. 램보 교수는 처음 윌을 발견한 사람이다. 그 역시 윌을(혹은 그의 재능을) 진정 아낀다. 다만 그와 숀이 윌에게 요구하는 바는 너무나도 달라 둘은 윌을 두고 부딪히곤 한다. 램보는 윌의 재능을 발휘하여 국가나 사회에 이바지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윌이 현재 즐기는 삶을 가치 없다고 생각하고, 윌의 천재성으로는 그보다 훨씬 훌륭한 일을 해야 한다고. 그래서 여러 회사의 면접을 주선하고, 윌이 거기에 가지 않거나 성의 없게 임하면 화를 내곤 한다. 숀의 생각은 램보와 달라, 그렇게 윌에게 어떠한 삶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윌이 좋아하는 삶을 살고 택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하되 조작해서는 안 된다고. 

 램보가 윌에게 바라는 것은 강요로 보이고 거부감이 들지만, 영화를 보면서 저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바로 저 사람이 지금 윌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저 사람에게는 저게 최선이라는 생각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가 짠해지기도 한다. 그로서는 진심으로 윌을 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어쩌면 잘못된 방식이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한 채.

 또한 그는 윌의 천재성의 그림자에 괴로워하는 살리에리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그 눈부신 천재성에 매혹되고,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아이 같은 살리에리. 이상하게 그가 괴로워하고 윌에게 매달리는(?) 부분이 짠하고 인상깊었다.

 

 윌은 숀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솔직함, 나 자신을 마주하는 법, 사랑. 특히 상처 받기 싫어 자신이 먼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윌에게 숀은 이런 말을 해준다.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니까. 중요한 건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가 하는 거지.

 

 이 말이 공허하지 않았던 이유는 역시 자신과 아내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전해주는 숀의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숀 아닌 로빈 윌리엄스로 돌아오면, 아내와의 첫 만남 이야기를 하던 그의 눈빛은 또 얼마나 깊이 사랑에 빠져 있는지.)

 숀과 윌이 신뢰를 쌓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진정한 대화는 상대방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곳을 찌를 때 이루어진다고. 그리고 그것이 공격으로 느껴지지 않기 위해서는 내 마음 속 깊은 곳도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또한 숀은 램보에게 말했던 대로 윌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기보다는 그에게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방황하는 윌에게 너는 무엇을 하고 싶냐고 집요하게 묻던 숀에게 윌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아주 근본적인 질문, 기본이라고 생각해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기 쉬운 것들을 숀은 이렇게 짚어낸다.

 

 그리고 숀은 무엇보다, 이렇게 쌓아올린 유대를 통해 윌에게 가장 필요했던 말을 건넬 줄 아는 멘토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

 처음 이렇게 건넨 숀의 말에 윌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알아요." 하고 대답한다. 그러나 몇 번이고 반복되는 숀의 진심 어린 말에, 윌은 마침내 어린아이처럼 무너진다. 처음에는 안다고 대답했지만 그건 지금까지의 윌이 그랬듯 겉으로 내보이는 거짓 단단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숀의 진심은 마침내 윌의 가장 약한 부분에 가 닿고, 그것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처음 느껴보는 그 직접적이고 따뜻한 온기가 진짜 윌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한 것이다. 상처투성이에 아주아주 연약하지만, 이제는 다른 상처를 입어도 괜찮다는 용기를 따뜻하게 간직한 윌을. 그렇게 윌은 자신이 떠나보냈던 사랑을 되찾기 위해 훌쩍 떠난다.

 

 네 잘못이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 때문에 누군가 나를 떠나가고, 세상이 이렇게 내게 냉혹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머리로는 그게 아니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지금까지 받은 상처와 지금의 못난 내가 모두 내 잘못이라고 막연히 생각할 것이다. 그리하여 진짜 내가 되지 못하고 거짓 나를 세운 후 그 껍데기 속으로 자꾸만 파고들어가고 작아질 것이다. 그렇기에 영화 속에서 숀 교수가 건네는 이 위로는 윌뿐만이 아니라 스크린 밖 관객들의 마음 속으로 깊이 와 닿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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