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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여행

190215-17 일본 교토 (1)블루보틀, 야마모토 멘조, 료칸 카나데

늘 오사카 갈 때 당일치기 정도로만 가던 교토.

지난 오사카 여행 때 교토에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기간이 너무 짧아 못해본 게 많았다.

그때 얘기하기를, 다음에는 교토만 가보자! 라고 했었고, 이번에 진짜 실행에 옮겼다.


교토에 도착하니 오후. 가장 먼저 숙소에 들러 짐을 두고 나왔다.

숙소 근처에 마침 우동으로 유명한 '야마모토 멘조'가 있었다.

점심을 훌쩍 지난 시간이라 배가 무척 고팠기에 일단 줄부터 서보기로 했다.


두시간씩 대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기에 걱정했었는데, 대기 방식이 바뀌었다.

정리권을 주면 표에 적힌 시간에 가게 앞으로 다시 오면 되는 방식.좋아..


거의 그림 그리듯 쓴 삐뚤빼뚤 한글이 귀엽다






시간 남는 김에 근처 헤이안 신궁부터 구경.

안쪽 정원은 지금 별것 없을 것 같아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선지 큰 감흥은 못 받음.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건 신궁이 아니라 블루보틀이었지.

걸어서 15분쯤 가면 블루보틀이 있었다. 열심히 걸어가는 길.





안녕 파란병





사람이 몹시 많아 자리를 잡는 데도 애를 먹었다.

주문을 하면 이름으로 불러준다.

눈앞에서 라떼아트를 해주는데 잔 표면까지 찰랑찰랑하게 담아주기 때문에 가지고 가면서 쏟을까 노심초사.


토토로 동전지갑은 예전에 부전야시장에서 사촌언니가 사준 것인데 여행 갈 때마다 함께하고있다. 벌써 몇년째람...


블루보틀 라떼는 뉴욕 갔을 때 먹어봤었는데, 되게 맛있었다는 인상만 기억에 남아있다.

이번에 교토 가서 먹은 라떼 역시 맛있었다. 고소하고 진하고. 성수에도 빨리 들어오면 좋겠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야마모토 멘조로 다시 ㄱㄱ

웨이팅이 워낙 많은 곳이라 그런지 테이블을 희한하게 놓아둔 것을 볼 수 있는데,
흔히 생각하는 4인용 테이블 중간에 칸막이를 두고 일행끼리는 옆으로 나란히 앉고 마주보는 쪽은 모르는 사람들이 앉는... 그런식이었다.


나는 냉우동과 우엉튀김 세트를 시켰다.
튀김이랑 우동 사이에 있는 저 집게같이 생긴 것이 면 커터였는데, 첨엔 이런 게 왜 필요하나 했지만 면을 한 입 무는 순간 바로 알게되었지.
면의 쫀득함이 진짜 미쳤다. 거의 떡 수준의 쫀~득쫀득함.
아 보통 면이 떡같다고 하면 욕인데 진짜 좋은 의미임. 밀도가 높고 찰지고 쫀득쫀득.
국물도 짜지도 않고 딱 깔끔하니 좋았고.
무엇보다 우엉튀김과의 시너지는 정말... 우엉이 이렇게 맛있는지 또 처음 알았네.

친구는 소고기 온우동을 시켰다. 빨간 국물이었고, 한 입씩 바꿔먹어보니 아무래도 온우동이라 면이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
친구는 뭔가 향신료 같은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했고, 냉우동이 더 나은 것 같다고 평했다.






니시키 시장은 사람이 참 많았고... 그냥 이것저것 구경하기 좋았던 것 같다. 해산물도 즉석에서 팔고.
우린 배가 불러서 뭘 사먹거나 하진 않았고 그냥 왔다갔다만.
이번 여행에서는 애초에 뭘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고양이 반다나만 봐도 귀여운데 '집에서 기다리는 고양이에게 선물을!' 이라니 너무 집사 양심 노리는 마켓팅 아님니까...



예뻐서 사고 싶었지만 넘 돈지랄같아서 참은 책갈피... 아른아른한다...




지나가는데 이렇게 직접 절구통에 깨를 빻고 있는 광경도 보고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경단도 보고






스누피 가게도 봄...





두어바퀴 훑고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구글맵이 친절하게 버스 타는 곳을 알려주긴 하는데, 정확히 어딘지 위치를 파악하기가 되게 힘들다.
반대편으로 알려주는 경우도 많았고.
이번 여행에선 버스를 많이 탔는데 그런 점이 조금 힘들었다.


그런데 또 큰 버스정류장에는 어르신들이 자원봉사처럼 버스 타는 곳을 안내해주고 있어서 그나마 괜찮았던듯.




우리가 묵은 곳은 료칸 카나데. 가성비 좋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다.
료칸은 처음 묵어보아서 기대가 컸는데 들어가자마자 생각보다 넓고 깔끔한 방에 감탄.


옷장에는 우리가 입을 수 있는 유카타가 두 벌 있다.
남색이랑 핑크색이라 친구한테 무얼 입을지 물어보았더니 자기한텐 남색이 잘 받아서 그걸 입고 싶긴 한데, 그럼 사람들이 우리를 커플로 오인할 것 같으니 카운터에 얘기해서 남색 유카타를 핑크로 바꿔 오겠단다.
? 무슨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ㅎ...


화장실이랑 욕실은 분리되어있고 둘 다 정말 깔끔한데,
화장실은 심지어 문 열고 들어가면 변기 뚜껑이 저절로 열려...
그런거 처음 봐서 동영상까지 찍고 난리침 헤헿





가이세키와 조식은 체크인 할 때 미리 예약을 해 두었다.
카나데의 가이세키는 방으로 갖다주는 방식은 아니고 식당에 내려와 먹게 되어 있다.

하지만 사람이 별로 없어서 신경쓰이지 않고 조용하게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요번 가이세키의 꽃이라고 생각되는 사시미 디쉬...!
닭새우에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 (사실 처음에 랍스터라고 생각했는데 직원분이 말해준 이름 검색해보고 알았음)


사실 친구는 날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이세키 예약할 때 알러지가 있는 음식이나 날것 괜찮은지는 미리 물어보는데,
친구가 이번에는 도전을 해보겠다며 괜찮다고 했었으나 막상 음식 나오니 힘들어서 많이 못 먹고 있는 상태.

직원분이 그걸 유심히 보시더니 바로 익혀드릴까 물어보고는 구워서 내주었다.
다음날 조식 역시 친구 것은 익혀서 나오고.
오... 서비스 정신에 감복.





소바 먹을 때쯤엔 이미 매우 배가 부른 상태였다.
그런 상태인데 밥 덜어먹으라고 친절하게 통째로 두고 가신 거 보고 또 감명받음 ㅋㅋ




마지막 과일 디시까지 아름답게 나옴.




카나데의 또 좋은 점은 이렇게 개별적으로 되어 있는 가족노천탕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예약은 필요하다.
우리같은 경우에는 예약하려고 했을 때는 예약이 가득 차 있었으나 식사 마칠 때쯤 타이밍 좋게 취소된 곳이 나와 바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물은 미리 받아주시는데 너무 뜨거워서 익을뻔 ㅋㅋㅋㅋ 찬물 틀어서 좀 온도를 맞추고야 들어갈 수 있었다.
하이볼 한 잔 하면서 우리끼리 느긋하게 앉아있으니 정말 행복했다.




사실 얼마 전부터 갑자기 삶에 낙이라는 게 없어졌다는 기분이 자꾸 들었었다.
그냥 내가 재밌게 하던 소소한 것들이 왠지 재미가 없었다. 감흥이 없다고 해야되나.
그렇게 좋아하던 연극/뮤지컬도 그냥 그렇고, 책을 읽어도 그냥 그렇고.
뭔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의무적으로 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주위 사람들한테도 삶의 낙이 뭐냐고 엄청 물어보고 다녔는데,
웃기게도 교토 와서 관광도 아니고 료칸 가이세키랑 노천온천 즐기면서 급 행복을 느꼈다 ㅋㅋㅋ


저날 좀 피곤해서 더 센치해졌을 수도 있는데, 가이세키 마지막에 나오는 딸기를 딱 먹는데 그 달콤함에 엄청 행복한 거다.
거의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는데, 그 감동이 가라앉고 생각해보니 그 상황이 너무 웃겼다.
딸기가 뭐가 그렇게 특별하다고 눈물이 날 만큼 행복해지나 싶어서 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가이세키의 끝에 딸려 있는 딸기지...


어쨌든,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나한테 중요했던 건 그것이었던 것 같다.
조용한 분위기, 온전히 맛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리고 소중한 사람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간.


친구한테 이런 얘기를 하면서 결론은 이렇게 냈다.
돈을 열심히 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