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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영화

아무도 모른다


재개봉한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고 왔다. 백수골방의 신촌골방톡이라는, CGV 프로그램으로.

예전에 정말 인상깊게 봤던 영화라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으로 함께 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처음 봤을 때는 영화나 감독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는 상태로 봤었고, 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른 영화 몇 편을 보게 된 후 관심이 생겨 찾아보다가 <아무도 모른다> 또한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먼저 어제 들은 백수골방님의 영화 이야기를 먼저 옮겨보자면.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다큐 감독 출신이라고 한다.

이 영화 역시 맨 처음 화면의 문구처럼, 대부분의 사건은 실화를 따랐고 인물의 심리 묘사만이 픽션이라고.

실은 실화가 훨씬 더 끔찍했다. 집에 가는 길에 검색을 하다가 영화보다 훨씬 끔찍한 실화에 경악.

어쨌든 감독은 영화 시작 부분에서 아키라와 엄마가 이사를 와서 이웃집에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 이미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가정의 파괴. 두 번째는 공동체의 파괴.

복지와 같은 공적 영역에는 어찌되었든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

이 영화에서는 그 사적인 영역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


- 이 영화에서 비행기는 하늘로 가까이 올라가는, 죽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유키에게 언젠가 모노레일을 타고 비행기를 보러 하네다로 가자고 했던 아키라의 약속은 유키가 죽은 후 그 시체를 캐리어에 싣고서 이뤄진다.

보통 비행기와 캐리어는 여행, 새로움, 설렘의 이미지이다.

이렇듯 일반적인 비행기+캐리어의 이미지와 영화 속 아이들에게 그것이 갖는 이미지가 대비되면서 이 죽음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한번 비행기가 죽음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은 마지막 즈음 아키라가 비행기를 바라볼 때.

아키라는 비행기를 바라보고, 카메라는 로우앵글로, 햇살은 아키라를 거의 카메라 정면에서 비춰 아키라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아키라는 상승을,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키라의 옷깃을 시게루가 잡아 끈다. 그 순간 아키라의 시선이 다시 내려온다.

유키가 죽은 날, 유키는 딱 이 때의 시게루같은 눈빛으로 아키라의 옷깃을 끌며 아키라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을 아키라는 외면했고, 그날 유키는 죽었다. 그래서 아키라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시선을 내렸던 것 같다.


- 아이들이 다함께 소풍을 나간 날, 하수구 같은 데서 피어난 꽃을 보며 아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누가 버리고 간 걸까?" "불쌍하다..."

그저 거기에 우연히 핀 꽃이겠지만, 아이들은 그 꽃들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자신들처럼.

아이들은 그 꽃의 씨를 받아와 컵라면 용기에 흙을 담고 심어 기른다.

버려진 아이들과 버려진 꽃. 아이들이 먹은 컵라면, 그리고 이제는 꽃을 키워내는 컵라면.

물을 주다가 시게루가 컵라면 화분을 떨어뜨리는 장면은 유키의 죽음을 암시하는 연출이 된다.


- 영화는 대부분이 아이들의 1인칭 시점에서 보여진다. 그러나 어른들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1인칭 시점은 거의 없다.

그만큼 어른들이 이 아이들에게 기울인 관심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필요할 때만 아이들을 찾는 모습이다.

아키라가 찾아간 아빠들은 아이를 절대 정면으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아키라를 도둑으로 몰아간 편의점 점장의 수첩은 너무나 위압적인 컷으로 잡힌다.

또, 유키가 죽은 날 마지막으로 유키를 위한 아폴로 초콜릿을 엄청나게 많이 사는 아이들에게도 점장은 이상하다는 기색은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이렇게 말한다.

"소풍 가나보구나. 신나겠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는 어른들.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결국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일 뿐이다.


이건 나중에 질의응답 시간에 나온 얘기인데, 일본에서는 편의점이 공과금 납부 등등 공적인 업무까지 거의 다 처리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영화에서도 아키라는 편의점에 자주 가고, 편의점에서 폐기 식품을 받아 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점장은 전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즉, 이렇게 공적 영역에서 아이들이 소외되고 있음을 표현한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은 일반적인 어른의 눈높이에서 네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끝이 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아이들을 바라봐주는 시선이 있다는 희망이 담긴 마무리.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지만 기억 나는 건 이 정도.

영화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미처 생각치 못했던 것도 알 수 있어서 더 좋았고. 비행기가 의미하는 죽음의 느낌 같은 것.




여기부터는 내 감상.


나는 보는 내내 햇살이 참 야속했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상관없이 영화 속 햇살은 너무나도 찬란하고 아름답다. 내가 스크린 속에 뛰어들어 저 햇살을 맞고 싶을 정도로.

백수골방님이 비행기와 캐리어가 일반적으로 가지는 의미와 영화 속 의미가 대비되어 비극성이 강조된다고 했었는데,

내게는 햇살도 그런 장치로 느껴졌다.


특히 유키가 죽은 후 야구 시합 때 들었던 응원가를 흥얼거리며 걷는 아키라의 시야에 비친 세상은 과다노출로 온통 하얗고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눈이 부시다.

그건 마치 천국 같기도 했다. 아키라는 속할 수 없는 곳.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내내 그렇지 않았을까. 방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룰을 지키고 있는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눈부신 햇살은 밝은만큼 야속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이 아이들은 보통의 세상과 대비되는 장면이 많이 보인다.

아키라가 장을 보러 계단을 오를 때, 왼쪽편에서 리코더를 불고 있는 아이들. 장을 보러 간 아키라 주위에는 온통 주부들뿐.

그리고 교복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을 부럽게 바라보는 아키라.


사실 아키라는 혼자 있을 때는 그저 그 또래의 아이 같았다.

장을 보러 갔다가 버려진 공을 주워들고 놀이를 할 때에는 앵글에 잡히지 않는 곳에 아빠가 있고 같이 놀고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놀이를 하느라 잠시 내려놓았던, 식료품으로 가득한 비닐봉지를 다시 들어올리는 순간, 그리고 동생들의 손을 잡는 순간, 이 아이는 아이같음을 내려놓고 어른도 감당하기가 힘들어 도망치고 싶은 무거운 짐을 어깨에 얹는다.





그래서 세뱃돈을 주는 장면이 참 인상깊었다. 그 전에 아키라는 이미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야마모토입니다"라고 바뀐 이름을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그 목소리에 자신의 온 세상이 흔들렸을 텐데도, 동생들을 위해 엄마가 준 것처럼 세뱃돈을 준비하는 것이다. 한자도 아직 잘 몰라 누군가에게 써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 어린 아이가.


영화에서 아키라가 처음으로 활짝 웃은 것은 친구들과 함께 할 때였다.

그 전까지는 부럽게 바라보기만 하던 자전거 타기도, 오락실 게임도 모두 그 친구들과 처음 해봤을테지.

그런데 이 아이는 그런 처음 맛보는 즐거움에 흔들리다가도 마침내는 동생들의 손을 다시 잡는다.


점점 사춘기에 가까워지는 아키라에게 아마 사키는 첫사랑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키를 만나러 가기 전, 이미 물이 끊겨 빨래를 제대로 하지 못한 티셔츠들의 냄새를 하나하나 맡아보다 하나를 골라 입고 사키를 만나러 가는 아키라의 모습과, 그런 아키라에게 감기라도 걸렸냐고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하던 쿄코의 목소리에서 아키라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사키가 준 음료의 병뚜껑을 깨끗이 닦고 있던 아키라의 모습에서는 풋풋한 마음을 느꼈고.

그런 사키가 자신을 위해 원조교제를 하고 돈을 건넸을 때, 아키라는 필요없다며 사키의 손을 쳐내고 한참을 달린다.

그랬던 아키라는 유키가 죽은 후 다시 사키를 찾아가 그때 그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유키에게 비행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아이에게도 많은 감정이 있을 것이다. 아키라와 같이 어른스러운 아이라면, 특히 그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고 있다면 더더욱.

그런데 아이는 그 많은 감정들을 접어두고 현실만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 어른스러움을 어찌 대견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아이의 깊은 눈빛은 나를, 내 무관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들은 영화 내내 덤덤했다. 유키가 죽었을 때조차 우는 아이 하나 없었다. 가장 격한 것이 유키를 묻은 후 앉아 사키와 대화하는 아키라의 손의 떨림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어른에 가까워지고 있는 아키라가 한번 화를 냈을 뿐, 아이들은 화조차 내지 않는다. 배가 고파 종이를 씹으면서도. 그러면서 또 다른 생명을 예쁘게 피워내기까지 한다. 제대로 씻지 못해 흙이 묻고 꼬질꼬질한 발로, 자신들이 마실 물로 화분에 물을 주던 시게루의 모습이 생각난다.

아키라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쿄코는 엄마가 예전에 주었던 세뱃돈 봉투와 아키라가 엄마인 척 준 봉투를 비교해보고 엄마가 준 세뱃돈이 아니라는 걸, 엄마가 자신들을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눈치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돌아올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 듯, 성이 난 아키라가 엄마의 옷을 다 팔아버리겠다고 꺼낼 때 그걸 버리지 못하게 한다.

어쩌면 쿄코는 엄마를 동경했을지도 모르겠다. 예쁘고 반짝거리는 물건을 잔뜩 가진, 손에는 예쁜 매니큐어를 바르고, 아침마다 화장을 하고 햇살 속으로 녹아 들어갈 수 있는 엄마를. 그리고 엄마에게서 바깥 세상을 보았을지도 모를 일이고.


또 어쩌면 아이들은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아이들 속에서 유키의 장례식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게 치러진다.

홀로 먼 길을 떠나는 유키에게 유키가 엄마를 마중하러 갈 때 신었던 아끼는 신발을 손수 신겨주고, 엄마가 사주었던 곰돌이 가방을 캐리어에 같이 넣어준 아이들. 그리고 언젠가 역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엄마는 오지 않고 다시 아키라와 둘만 함께 손을 잡고 걸었던 조용한 밤의 그 길을 이번에는 식은 몸으로 캐리어에 담겨 함께 가는 유키.


차라리 아이들이 울고 화를 냈으면 이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애달프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아도 무성히 꽃을 피워내던 하수구 속의 꽃들처럼, 그저 주어진 햇빛 한 줌에 바깥의 공기 한 숨에 행복해하는 아이들. 악취가 나는 환경 속에서도 푸른 생명력을 키워내던 아이들.


따뜻한 시선이 있었다면 이 아이들의 행복은 더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었을 텐데. 미안하고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주위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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