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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책

우아한 가난의 시대 소확행, 시발비용, 탕진잼, 욜로... 소비와 관련된 이같은 신조어들은 계속해서 쏟아져나오고 있고, 아마 그건 소비 행태가 트렌드와 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떠올려보면, 그냥 길을 걷다가도 멋지게 우뚝 솟아오른 아파트를 보고 '생전에 서울에 집 한 채는 살 수 있을까' 하기 일쑤다. 그러고보니 오늘도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다 눈앞의 아파트를 보고 '저 아파트 한 채만 있었으면 좋겠다' 했고, 그래서 사무실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한결 더 무거워졌다. '로또에 당첨되자'라거나 '중국 재벌과 결혼하자' 따위의 현실감 없는 농담은 현실만 더 무겁게 한다. 그렇게 가기 싫은 사무실로 돌아가 수십 년을 일만 한다 해도 아마 회사 옆 아파트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삶은 진짜 .. 더보기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 (Happily) Ever After 열정적 사랑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사랑은 변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고, 혹은 변한 사랑에 상처받았을 것이며, 나 역시 그렇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을 통해 사랑은 지속되는 것임을, 단지 열정이 아니라 기술임을 말한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27p.) , 에서 그랬던 것처럼, 작가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는 한편으로 군데군데 그들의 심리와 사랑에 대해 설명하는 대목들을 넣는다. 특히 이 책의 주인공 라비와 커스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작가는 그들이 유년기에 겪은 환경으로 인한 그들의 심리 상태를 주목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라비는 바람 하나 들지 않는 꽉 닫.. 더보기
주식하는 마음 최근 주위가 주식 얘기로 들썩들썩하다. 평소 그런 것엔 관심이 전혀 없지만 친구들이 너도나도 주식 이야기를 하니 슬슬 나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내 이런 반응에 이제 주식을 뺄 때가 되었다는 고려를 심각히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전에 이미 멋모르고 코인 샀다가 폭망한 기억도 있고(빼지도 못하고 강제 존버 중이었는데 요즘 다시 오르는 중이라서 존버는 승리한다 외치는 중) 일단 공부를 선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제 신문 읽기부터 시작하고, 책으로 공부를 해볼까 하는 참에 친구가 추천해준 책이 바로 . 처음에는 그냥 그런, 주식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라고 주관적인 생각을 풀어놓은 책(그런 책에 약간 거부감이 있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저자는 경제학, 심리학 등 다양한.. 더보기
경애의 마음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본 사람들은 그 공백으로 서로 이어지는 걸까. 상수. 부장대리라는 애매한 직급을 가진, 본인은 부정하고 싶어하지만 국회의원 출신인 아버지의 인맥 덕에 겨우 회사에 붙어 있는 인물. 그루밍에 관심이 많고 ‘일반적인 한국 남자’들의 생활에 잘 끼어들지 못하는, 그럴 때마다 말이 길어질 것 같으면 ‘군대 면제에요’를 모든 일의 해답인 양 내세우는 인물. 그는 ‘언니는 죄가 없다’는 페이지를 운영하며 수많은 여성들의 익명의 고민을 듣고 공감해주는 걸 가장 큰 보람으로 삼는다. 경애. 파업을 주도했다고 해 회사에 미운털이 박혔으나 엄마의 건강 문제로 다른 동료들처럼 회사를 떠나지 못하고 회사로 돌아온 인물. 회사는 그녀를 총무과로 보내 보란듯 숱한 비품들처럼 창고에 쳐박아놓았고, 팀원을 달라는.. 더보기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최근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 이슈는 너무 혐오로 치우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남성과 여성을 이분화하고, 여성이 아닌 모든 것을 배척하는 듯이 보인다. 페미니즘을 알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읽었고, 그런 생각을 했다.페미니스트라고 자칭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그러니 당당하게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자고. 그러나 최근에는 그게 조심스럽다. 페미니스트=남성혐오자 같은 공식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는, 결국은 평등주의자에 가까운데 말이다. 여성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설 수 있는, 그게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페미니즘이다. 벨 훅스의 에서 나는 내가 그리는 페미니즘을 만날 수 .. 더보기
테스 한 소녀가 있다. 그녀의 집안은 가난하며, 부모는 제대로 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어느날, 소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집안이 몰락한 귀족 가문이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이용해 진짜 귀족처럼 살려는 꿈에 젖는다.테스 더비필드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를 읽으며 인상깊었던 것은 테스의 주체성이었다.좋은 집안으로 시집을 가는 게 최고라고 믿고 그렇게 하기를 종용하는 부모와 달리, 테스는 스스로의 손으로 삶을 영위해나가길 원한다.더버빌 집안으로 가게 된 것도 당나귀 프린스가 사고로 죽었기에 그에 대한 책임감을 지고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강간을 당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테스는 그 아이를 낳게 한 자 - 알렉 더버빌의 도움을 일절 받지 않는다.오히려 그 사실을 아예 그에게는 비밀로 .. 더보기
나치의 아이들 한 배우의 조상 중에 친일파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나 나름대로도 이것저것 생각을 해보다가, '외증조부'라는 먼 관계로 이어진 후손에게까지도 낙인이 이러한데 그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여러 영화나 책들을 보면서 범죄자 당사자보다 그의 가까운 이들에게로 시선이 돌려질 때도 있었고.그렇기에 우연히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보게 되었을 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은 나치 독일(제3라이히) 하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던 자들, 그들과 가장 가까운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당연히 나치 독일 하에서는 그 권력에 힘입어 누구보다도 호화롭고 행복한 생활을 하던 가족들.그러나 독일의 패전, 그리고 나치 독일을 이끈 주역들이 전범 재판을 받고, 사형이.. 더보기
태백산맥 아마 조정래의 대하소설들은 많은 사람들이 '언젠간 읽어야지' 하면서 벼르는 책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내게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번에 마침내 대업을 완수했다. 태백산맥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것은 역사책 속의 몇 줄 문장으로만 생각했던 당시의 삶, 특히 민중의 모습을 숨결이 느껴질만큼 가까이 느꼈다는 점이었다. 1부에서는 민족의 분열과 대립이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다. 태백산맥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마침 남북정상회담 등 통합의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던 때였다.내가 사는 세상은 그런데 책 속에서는 민족이 분열되기 시작하고 있어서 기분이 참 묘했던 기억이 난다.특히 친일하던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분노에 슬쩍 편승해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 역겨웠다.'친일파 청산을 못한 건 이승만.. 더보기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영화 를 떠올렸다.이 책과 그 영화 모두 총기 난사 가해자를 자식으로 둔 엄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 를 본 사람들은 많이들 얘기한다. 준비되지 않은 부모가 만든 괴물이 케빈이라고. 나에게는 그런 감상이 새로웠다. 왜냐하면 내 눈에는, 아무리 엄마가 노력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괴물이 케빈이었기 때문이다.물론 그녀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고 그리 모성이 넘치지 않았고, 때로는 자유를 모두 앗아간 케빈을 증오했을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케빈을 어쩔 수는 없었다. 그냥, 어쩔 수 없었던 거다. 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가해자의 엄마, 수 클리볼드는 자식에게 최선을 다했다. 충분히 사랑을 쏟았고.. 더보기
82년생 김지영 책 표지에 떡하니 '장편소설'이라고 쓰여있긴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82년생 김지영 씨가 살아온 궤적이 자신의 것과 같다고 느낀 여성이 많을 것이다.그래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김지영 씨가 겪은 것들, 많은 여성들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겪어왔던 것들이다.또, 김지영 씨의 경험은 그와 유사한 나의 경험들을 자꾸만 생각나게 한다.김지영 씨가 자신이 아닌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로 말을 하게 된 것도 아마 모든 여성들이 그녀와 다르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나마 김지영 씨는 다행인 편이다. 그녀의 어머니도, 언니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들이었으니까.여전히 사회는 여성의 역할과 삶을 자꾸만 규정하고 억누르지만, 그래도 지영 씨..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