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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떠올렸다.

이 책과 그 영화 모두 총기 난사 가해자를 자식으로 둔 엄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본 사람들은 많이들 얘기한다. 준비되지 않은 부모가 만든 괴물이 케빈이라고.

나에게는 그런 감상이 새로웠다. 왜냐하면 내 눈에는, 아무리 엄마가 노력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괴물이 케빈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고 그리 모성이 넘치지 않았고, 때로는 자유를 모두 앗아간 케빈을 증오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케빈을 어쩔 수는 없었다. 그냥, 어쩔 수 없었던 거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가해자의 엄마, 수 클리볼드는 자식에게 최선을 다했다. 충분히 사랑을 쏟았고 세심하게 보살폈으며 딜런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 다정하고 친절하던 딜런이 어느날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 날 이후로 모든 게 바뀌었다. 그녀는 하루만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고, 선량한 이웃이라는 이름을 잃었다.

그리고 '가해자의 엄마'라는 새롭고 끔찍한 정체성을 낙인처럼 달게 되었다.

이웃들이, 모든 나라가, 모든 세계가 그녀와 가족들을 손가락질을 했다.

딜런이 그렇게 된 원인은 분명히 그 가족 안에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 역시 죄인이라고.

자식이 그렇게 되어가는 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알았다면 방관자가 되는 것이고, 몰랐다면 무심한 부모가 되는 것이다.

이렇든 저렇든 잘못된 부모라는 이름은 벗어날 수가 없다.


사실 나 역시 많은 범죄자들이 그런 짓을 저지른 배경에는 가정 환경이 깊숙이 연관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쉬이 버리지는 못했다.

가해자의 엄마 본인은 아직 알지 못하겠지만 그 가정 안에 분명히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그녀가 이렇게저렇게 써놓은 부분이 분명히 문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이 책을 1/3정도 읽을 때까지만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자 수 클리볼드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 그 사건과, 그 후로도 끊이지 않는 날카로운 손가락질에 직면하여 고민을 시작한다. 정말 나는 아이를 잘못 키운 것일까? 뭘 놓친 걸까? 대체 이 일은 어떻게 일어나게 된 걸까?

이 책은 십수년 간 이어진 그녀의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가까이에 악이 있다면 알아볼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괴물을 잘못 볼 수는 없다고. 괴물을 보면 당연히 알아보지 않겠는가? 딜런이 악마이고, 병들어 걷잡을 수 없는 상태의 아이가 바로 코앞에 무기를 모아놓는데도 생각 없는 부모가 내버려둔 경우라면, 이 끔찍한 비극이 위층 포근한 침대에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과 평범한 엄마 아빠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가슴 아픈 사건이지만 우리와는 먼 일이 된다. 딜런이 괴물이라면 콜럼바인 사건은 처참할지언정 이례적인 일,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라고 여길 수 있다.

 문제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거다. 딜런이 한 행동이 괴물 같은 무시무시한 일이었긴 하지만, 딜런의 실상이 어떠하였는지는 그보다 더 파악하기 어렵다. 딜런은 만화에 나오는 악마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이 극악무도한 참극의 배후에 있는 불편한 진실은, '좋은 가정'에서 걱정 없이 자란 수줍음 많고 호감 가는 젊은이가 그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p.116)



잠시 영화 <케빈에 대하여>로 돌아가보면, 케빈의 아버지 역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은 그 아이에게 모든 것을 해 주었고, 우리 가족에겐 모자란 것이 없었다고. 가정은 유복하고, 자신과 케빈은 때론 친구처럼 지내는 다정한 부자였고, 케빈 역시 그런 아버지를 잘 따르는 착한 아이였다고.

하지만 스크린 밖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모두 알고 있다. 케빈은 자신의 진짜 모습은 감쪽같이 아빠에게 숨길 수 있는 아이라는 것. 아빠에게 천사같이 웃어보이던 아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어떤 악랄한 미소를 짓고 있는지.


수 클리볼드는 cctv에 찍힌 딜런과 에릭, 그리고 그들이 찍은 비디오를 보면서 딜런이 숨기고 있던 뒷모습을 알게 된다.

그래, 아이들은 자신이 숨기고 싶은 모습은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 그 대상이 가장 친밀한 부모라 하더라도.

꼭 영화 속 케빈처럼 사이코패스의 천성을 타고 난 아주 나쁜 아이들만이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저 아이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자신하던 엄마에게 그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그 모습 역시 딜런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조차도 그녀에게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고, 너무나도 힘겨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대체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답은 의외로, 딜런의 '심각한 우울증'이었다.

자신을 파괴하고자 하는 딜런의 심각한 우울증이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있고 세상을 파괴하고 싶어하는 에릭과 만나 폭발한 사건.

그것이 그녀와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이었다.


다시 한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식이 그렇게 심각한 우울증을 겪는데 부모가 모른다고? 어떻게 모를 수가 있지?"

하지만 의외로 모를 수가 있다. 아주 작은, 별로 특별하지 않아보이는 일이 바로 그런 이상의 증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가 자지 않겠다고 칭얼거리거나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것이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것을, 어떻게 모두가 알 수가 있겠는가?

어떠한 일이 일어난 후 차근차근 아주 작은 부분까지 생각해보니 그게 문제였구나, 라고 비로소 깨닫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아주 작은 부분까지 생각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수 클리볼드 역시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며칠 전에 아들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러나 그때 딜런의 눈 속에 있는 감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책을 썼다.

딜런의 케이스가 살인-자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자살을 막고, 그럼으로서 이런 참극이 일어나는 일까지도 막기 위해.


그러면서 그녀가 강조하는 것은 우울증은 '뇌 건강'의 이상징후라는 것이다.

이 '뇌 건강'이라는 단어가 인상깊었다.

이상하게 '정신병'이라는 말은 너무나도 부정적인 뉘앙스이지 않은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고.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는 것조차도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생각해보면 '정신병자'라는 말이 욕으로 쓰이는 것이나, '정신병동'의 으스스함도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 같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정신의 아픔 역시 팔이 부러지거나 발목이 삐는 것처럼, 뇌의 어떤 부분에 이상이 있어서 생기는 것일 텐데.

희한하게도 이렇게 정신이 아니라 뇌가 아프다고 하니 정말 일상적인 일처럼 느껴진다. 단어의 힘이 어찌나 큰지.

어쨌든, 이렇게 우울증 등의 병을 누구든 걸릴 수 있는 일상적인 질병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대처하는 게 꼭 필요한 것 같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물론이고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는 그 누구든 말이다.




좀 별개의 이야기인데, 가해자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떨까? 주변 사람들의 눈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저자 수 클리볼드도 그렇고 그녀가 자살 유족들의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있는 살인-자살자의 유족들도 그렇고, 여전히 그들을 추억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으... 윗 문단 써놓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포기했다. 생각도 복잡하고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일듯.


그리고, 저런 일이 있었음에도 수의 다정한 이웃이 되어준 사람들이 참 대단했다.

그 사람의 본질을 봐준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좋은 사람들을 이웃으로 둔 수의 가족도, 그러니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괴물은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그 괴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물론 가장 가까운 가족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그런 괴물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관심 어린 눈길과 뇌 건강을 위한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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