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은 네 이야기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2016년의 대한민국, 1945년의 일본, 2004년의 이라크, 2010년의 백령도 초계함.
네 가지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군대라는 조직의 일부는 아니었을 테니까.
왜 살아야 하는지, 그것을 찾기 위해 원래 면제인 군대를 자원입대했던 탈영병.
식민시대에 일본인으로서 카미카제에 입대하는 조선인 청년.
국가에 몇 번이나 구조를 요청하는 목소리를 보냈으나 결국은 국가에 외면당한 청년.
그리고 각자의 약혼자와, 아들과, 부모님을 생각하던, 그리고 그저 즐겁게 춤을 추던, 그러다 한 순간의 '쿵'하는 소리에 끝을 맞은 이들과 그것을 모두 지켜보고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해야 했던 이.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군인은 폭력이라는 것의 최전방에 노출되어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그들에게 폭력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이들에게 준 것은 무엇인가?
국가는 이들의 물음에 답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무언가 말하려는 이들의 입을 막고, 목숨을 바치라 말했다.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이러한 국가를 위해서?
카미카제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본에 살고 있는 조선인 청년이다.
조선에서 건너와 일본에서 차별 받고 손가락질 받는 게 싫어서 가족들만이라도 온전한 일본인으로 살게 해 주려고,
그리고 이왕 끌려갈 것 스스로 입대하자고 마음먹고 그 두려워하던 군대에 자원 입대하는 19살 조선인 소년병.
그런 청년을 위해 파상풍으로 고름이 흐르는 다리를 병원에도 보이지 않고 그 돈을 모아 불고기며 김치며 진수성찬을 차린 어머니.
동생에게 어머니를 부탁하는 내용을 쓴 메모를 전달하고 떠나는 청년의 뒷모습에 대고 어머니는 "한 점만 더 먹고 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출격 전,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크게 불러보고 싶다는 청년의 편지를 품에 안고 향을 올리며 또 다시. 한 점만 더 먹고 가지...
19살 어린 소년들에게 국가를 위해 폭탄이 되어 한 몸을 산산조각 부수라고, 그것이 죽어도 죽지 않는 길이라고, 너희는 일본의 자랑이라고,
그렇게 허황된 세뇌를 하고 그들을 인간 폭탄으로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게 대체 무슨 국가란 말인가.
자신들의 맹목적인 믿음과 광기로 전쟁을 벌이고, 수없이 많은 국민들에게 편협한 증오를 심어주고, 심지어 그들을 사지로 내모는 것이.
1940년대, 광기가 세계를 휩쓸었던 때였을 것이다 물론.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국가는 때론 국민의 생명을 외면한다. 이 극의 이라크 이야기에서 그러했듯.
그 이야기가 실화이고, 지금도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
어떤 이들은 국가가 지켜주지 못했기에 스스로 군인이 되는 길을 택하기도 했다.
이라크 이야기에서 자신은 군인이 아니니 살려달라고 하는 한국인 인질에게 이라크 무장단체의 조직원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도 원래 군인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전쟁이 나를 군인으로 만들었다고.
한밤중에 집에 쳐들어온 미군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그들은 소녀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끌고 가고 소녀를 불구로 만들었다.
자는 중에 폭격을 당한 여인은 눈앞에서 가족이 산산조각 난 것을 보아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똑같은 폭력을 인질에게 행사한다. 그럼으로써 그들 스스로 폭력으로 무장한 잔혹한 군인이 된다.
결국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점점 더 커져가기만 하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만 그러할까?
탈영병의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모두가 군인이다.
탈영병의 아버지는 매일 밤늦게까지 407호와 507호 간의 층간소음을 빌미로 한 전화 싸움에 시달리고 있다.
의지하는 여자는 당뇨에 좋다는 거짓말을 하며 실은 당뇨에 아주 나쁜 고구마를 그에게 주고 있다.
그럼에도 아들인 탈영병이 407호인지 507호인지의 전화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자, 너는 아직 아무 것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아버지.
이 아버지는 평범한 여느 사람이 그러하듯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버텨가야 한다는, 죽을 날까지 끝나지 않을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에게도, 혹은 그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에게도 전쟁인 것 같다.
나는 전자처럼 살고 있지만 그래도 한번씩 후자같은 마음이 든다. 그럴 때면 내가 밟고 있는 땅이 푹 꺼지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즈음 탈영병의 외침이 그래서 마음을 쿡 찔렀다. : "사람이 어떻게 그냥 살아요? 그래도 내가 사람인데!"
개인적으로 초계함 이야기가 전해지는 방식이 참 가슴아팠다.
다섯 명의 병사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말한다. 소령은 웃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 마지막 병사인 이병이 자신은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깜깜하다고 하자 소령은 그에게 이 배에서 나가라고 화를 낸다.
다른 이야기가 교차된 후, 다시 이 다섯 명의 병사와 소령이 등장한다.
그들은 다시 차례대로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똑같이 밝고 유쾌해야 할 이야기가 어둡다. 소령도 웃지 않는다.
'아빠 곧 갈게'는 '아빠 못가'가 되고, '나랑 같이 매일 아침 먹자'는 '혼자서도 아침 잘 챙겨먹어야 해'가 된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던 이병은 유일한 생존자이다. 사실은 모든 걸 다 기억하고 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는 사람.
국가는 희생된 이들의 합동 영결식을 열고 훈장을 수여한다.
그러나 유가족과 생존자를 위로하기보다는 기자회견과 사진 촬영에 더 집중하고, 끝까지 이들이 마스크를 벗지 못하게 한다.
그 생존자의 마음의 짐은, 유가족들의 슬픔은 대체 어떤 훈장으로 치유될 수 있단 말인가.
극 중간중간 소름에 몸을 떨었고, 극이 끝나고도 쉬이 일어나지 못했다.
폭력, 국가, 인간, 삶,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생각케 만든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