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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연뮤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보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청난 충격이고 전율이었다.

이상하게 맨 처음 장면에서 어른들이 들어가고 남아있는 빌리를 볼 때부터 내내 울었던 것 같다.

대체 왜 눈물이 났는지는 모르겠는데 벅차고 슬프고 대견하고... 뭐 이런 감정들이 복합돼서 많이 치고 올라왔나보다.

문득 이 세계에서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흠뻑 빠져들었다.




이 뮤지컬을 보면서 연출적인 부분들이 너무 좋았다.

영화에서도 빌리의 꿈과 아버지의 현실이 대비되는 장면을 좋아했는데, 1막에서는 아예 발레교실과 시위를 한 공간에서 구현해버린다.

그 극적인 대조가 정말 소름끼치게 좋았다.

누군가는 먹고 살기 위해서 현실에 치열하게 맞서 싸우지만, 그 같은 세계에서도 누군가의 순수한 꿈은 마냥 커져갈 수도 있다는 게.


1막 마지막 분노에 가득 찬 빌리의 춤도.

중간에 어딘가에 갇힌 모습이나, 경찰의 방패에 매달리는 모습 같은 것들이 현실에 부딪힌 아이의 절박함을 잘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2막 체육관에서의 춤도.

영화에서는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 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뮤지컬에서는 성인이 된 빌리와 현재의 빌리가 함께 '백조의 호수'를 추는 환상적인 모습으로 연출됐다.

어린 빌리는 미래의 자신과 함께 춤을 추며 중력마저 벗어나 하늘을 날고, 

땅에 착지해서 마지막으로 우아한 턴을 선보였을 때 바로 그 눈앞에는 빌리의 춤을 모두 보고 있던 아버지.

아마 아버지도 빌리의 춤과 그 속에 녹아있는 빌리의 꿈을 고스란히 보았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해야 할까.


왕립발레학교 면접에서 춤을 출 때 어떻냐는 질문에 대해 '전기가 흐르는 것 같다'며 이어지는 빌리의 춤은 또 백미.

정말 자유롭게 무대를 활보하는 그 작은 꼬마의 온몸에서 터져나오는 에너지에 내 몸에도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이런 부분들은 오히려 영화보다 더욱 환상적인 장면을 구현하고 있어서 정말 마법같았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조합을 배신하고 파업을 깼다가 돌아오는 아버지가 빌리의 형인 토니와 대립하는 넘버에서 아버지의 항변은 여전히 눈물겹다.

이 아이는 이곳을 벗어나면 빛날 수 있다고.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의 삶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주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도대체 얼마나 가진 것을 더 버려야 겨우 한 발짝 더 나은 것을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일까.


다음 장면에서 사람들은 없는 돈을 한푼 두푼 모아 빌리 가족에게 준다.

조합을 배신한 자가 뭉칫돈을 주러 오는 게 문제가 되고.

토니가 맹렬히 반대했음에도 결국은 그 돈을 받게 되지만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찜찜함은 마침내 빌리가 왕립발레학교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은 그 순간에 함께 터져나온다.

파업이 실패하고, 이제 이들은 곧 광부인 자신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빌리가 꿈을 향한 한 걸음을 마침내 내딛게 된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광부들이 땅 속으로 내려가며 켠 헤드라이트는 빌리를 환하게 비추어준다.

누군가는 패배하고 현실에 굴복하여 꿈을 빼앗기는데,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빛나는 꿈을 품고 있다.
암담한 현실에서 꿈을 꾸는 건 이기적이고 철 모르는 짓인걸까?

빌리가 꿈을 꾸고 주위 어른들이 그걸 지지해줄 수 있었던 건 빌리가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특별히 용인된 것일까?

그냥, 그런 정리되지 않는 질문들이 떠올랐다.



사실 뮤지컬을 보기 전에는 막연하게 '춤 위주인 극이니까 감정선 같은 부분은 약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마이클을 통해 '다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 부분도 너무 좋았고 (이 부분은 커튼콜에서 다시 한번 등장.)

가족의 따뜻한 사랑도....ㅠㅠ 




하여튼 너무 좋은 극이었고 최고의 찬사도 모자랄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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