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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연뮤

킬롤로지

상대방을 최대한 잔인하게 죽일수록 많은 점수를 얻게 되는 게임, 킬롤로지.

한 소년이 이 게임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한다.
게임의 개발자는 그건 그저 게임일 뿐이라고 하고, 살해당한 소년의 아버지는 그에게 복수하기를 원한다.
이 세 남자의 독백으로 진행되는 연극, 킬롤로지.

처음 시놉시스를 읽고 기대한 것은 게임 개발자 폴과 복수하는 아버지 알란 사이의 팽팽한 대립과 긴장감이었다.
극을 보고 나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부모와 자식이 된다는 것에 대한 생각들이었다.

*

데이비

데이비의 이야기에서 느낀 키워드는 무관심과 방관이었다.
데이비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버리고, 혼자 어린 데이비를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삶의 팍팍함에 지쳐 데이비에겐 한 번의 미소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는 어린 데이비를 집 안에 두고 문을 잠가 그를 가둬버리던 어머니.
그런 무관심 속에서 데이비는 또래들의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다.

데이비를 꽉 잡아주던 존재는 아빠가 9살 생일에 선물해준 개 메이시였다.
'아빠'라고 처음 부른 데이비의 말에 비로소 아빠가 된 듯, 같이 살자는 말을 해두고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메이시는 남았다.
데이비가 슬픔으로 잔뜩 몸을 웅크릴 때, 메이시는 그 슬픔의 틈을 파고들어와 따뜻한 무게로 데이비를 안아주던 존재였다.
그러나 폭력적인 또래들과의 일에 엮여 데이비는 저 대신 메이시를 희생시키고, 제 입으로 그렇게 해달라고 말하고, 그리고 눈앞에서 메이시가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제 데이비를 잡아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직후 데이비가 한 행동은 자신을 위로하는 착한 선생님의 얼굴에 의자를 집어던지는 일이었다.
'그 선생님은 착하고 전혀 무섭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가난한 아이는 너무 빨리 세상의 폭력과 폭력이 행해지는 원리를 알아버린 것이다.

데이비가 살해당하던 날, 그는 여덟 살짜리 꼬마의 자전거를 뺏아타고 달리고 있었다고 했다.
처음 그 대사가 나왔을 때는 갸우뚱했다. 이 불량스런 청소년이 왜 하필 여덟 살짜리 꼬마의 자전거를?
하지만 아주 나중에, 더 상세하게 나오는 데이비의 이야기.
길을 지나다 생일 기념으로 받은 듯한 자전거를 탄 여덟 살짜리 여자애와 부딪혔는데 그 아이의 아버지가 나와 데이비를 '우리 친구'나 '저 분'이라고 부르면서 아이를 안심시키듯 미소짓는다.
뭐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는 듯한 그 미소.
데이비는 충격받는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고 느낀다. 자신은 그런 미소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으니까.
어머니는 미소 한 번 지어주기가 힘이 든 사람처럼 굴었고, 아빠는 곁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기어코 아이의 자전거를 빼앗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 자전거를 타고 차도를 달리다 삐딱한 마음에 뒷차의 진로를 방해하고, 그리고...

이 대목에서 나는 수많은 사소한 것들을 가정하고 싶어진다.
엄마가 데이비에게 한 번이라도 기꺼이 미소지어줬다면.
아빠가 데이비를 데리고 바다로 가 함께 살았다면.
그날 랜달과 부딪히지 않았다면, 그래서 메이시를 잃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세상에 그런 미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기댈 곳도 잡아줄 곳도 있게 된 데이비는 그 아이와 아버지에게 웃어보이고 다시 갈 길을 갈 수 있었을까? 그런 끝을 피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 알란이 나중에 상상하게 되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택해서 현실의 삶으로 살아낼 수 있었을까?

언젠가 데이비는 문 틈으로 보이는 엄마의 웅크린 작은 모습을 보고 그대로 집어내서 버려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작은 엄마의 모습은 늘 데이비의 가슴 한켠에 생생히 남아 언제든 꺼내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때 메이시가 데이비에게 했던 것처럼, 데이비가 엄마의 슬픔 틈을 파고들어 따뜻한 무게를 나눠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데이비가 엄마의 그 모습을 후회처럼 늘 안고 살았을지도.
데이비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면, 그래서 그것을 돌려줄 수 있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자전거 바퀴살에 끼워진 플라스틱 조각들이 흩어진 걸 보고 별처럼 아름답다고 감탄하던 데이비.
그리고 그는 '저 별을 향해' 간다.
자신이 닿지 못했던, 모든 게 괜찮아지는 미소가 빛날, 별들을 향해.


*


반면 폴의 환경은 데이비와는 정반대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성공했고, 폴은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다. 그의 아버지의 말대로, 태어날 때부터 성공한 셈이다.
그럼에도 폴은 그리 성공한 인간 같지는 않아 보인다.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는가 하면, 비도덕적인 것에도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쉬이 인정하지 않는다.
잔인하기 그지없는 게임 킬롤로지를 만들어내고, 그 영향으로 아이가 죽었음에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는 커녕 그의 아버지가 보낸 메일을 읽고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며, 게임은 게임일 뿐이며 오히려 킬롤로지가 행동의 결과를 보여주므로 도덕적이라고 역설한다.

폴이 해주는 아버지 이야기에서 느낀 키워드는 위선, 그리고 폴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폴이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폴은 아버지와 캠프를 갔던 어렸을 적의 기억을 아직까지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때 아버지는 새까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폴에게 물었다. 저게 정말 새까만 것 같냐고.
하지만 하늘은 별들로 가득 차 있고, 까맣게 보이는 것은 단지 별이 너무 멀어 아직 우리에게 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쏟아지는 별들 속에서 폴은 별에 가고 싶어하고, 아버지는 폴이라면 갈 수 있을 거라고 다정하게 말해주고, 내려오는 길에는 커다랗고 따뜻한 손으로 폴을 잡아준다.

하지만 그 이후 폴이 게임에 빠지면서 점점 아버지와 폴의 사이는 멀어진다.
사실 캠프의 기억에서도 이미 아버지는 폴을 압박하고, 폴은 그런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 어떤 대답을 해야할까 초조해했었다.
그러니 점차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압박만 해대는 아버지에게서 폴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또 한편, 위험하기 짝이 없는 원자로 청소 노동자들을 위한 노조 활동을 하다 해고당하고, 청소업체를 차려 백만장자가 된 아버지는 자신은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며 유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정말 그뿐이었을까? 富는 정말 사회를 위한 노력 속에서 저절로 만들어졌을 뿐일까?
폴의 이야기를 들으며 관객인 나는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되고, 아버지의 위선을 슬쩍 엿보게 된다.
폴 역시 동경하던 아버지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았을 것 같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폴은 '위악'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의 가식에 반발하듯 솔직하다는 이름 하에 자극적이고 비도덕적인 것, 그러니까 킬롤로지 같은 것에 착상하게 된 것 같다.
실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를 위해 연구기관에 거액을 기부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를 위한 것이라고 비꼬는 것도 그랬고.
그리고 아버지가 알츠하이머와 섭식거부로 진짜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자신의 허락 없이는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며 강제로 껍데기만 남은 그를 연명시켜 곁에 잡아둔다.
아버지를 잔인하게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에 게임 킬롤로지를 만들어냈다고 했으면서 아버지의 '순리에 따른' 죽음은 원치 않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폴은 아버지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그 큰 손으로 자신을 잡아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대로 제가 아버지를 곁에 매어두었을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인 모양이다.

후에 폴은 아이를 입양한다. 그에게 잡아줄 것이 필요하다고 했던 주위의 조언 때문인지, 아버지를 보내고 대신할 것이 필요했던 것인지.
아이를 입양하고, 그 아이는 폴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아버지. 앞서 데이비의 대사에서 나왔듯, 아버지라는 호칭은 사람을 아버지로 만들어주는 모양이다.
폴은 에단을 통해 걱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거리는 사이코들로 가득하고 매일 밤 살아 돌아오는 게 기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데이비의 사건을 통해서이든 아니든.
그렇기 때문에 에단을 보호하려 들지만, 에단은 순진하게도 여긴 나의 동네이고 아이들도 다들 걸어다닌다며 본의아니게 그를 자꾸 걱정만 시킨다.
결국 폴이 택한 길은 파양이었다. 마치 그 아이를 '집어 내다 버리는' 것처럼 간단하게.
데이비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바랐지만 하지 못했던 것을 폴은 말 한마디로 해치워버렸다.
그건 진짜 핏줄과 만들어진 핏줄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었다.

자신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던 폴은 결국 아버지가 된다는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

알란

폴과 데이비가 아들들을 대변한다면, 알란은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가 아주 어릴 적에 아들을 떠나 이따금씩만 그를 방문했고, 바다로 가자는 지키지 못할 약속만을 남겼던 아버지.
그는 아들이 살해당한 후에야 아들의 그 따뜻한 무게, 자신을 잡아주었던 그 온기를 떠올리고 수많은 후회를 매일 되씹는다.
복수하러 찾아간 폴의 아파트에서 그는 가해자들이 아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동안 찍은 비디오를 튼다.
법정에서는 차마 보지 못했지만, 그것을 보지 않으면 아들을 그 고통 속에 홀로 내버려두는 것 같아서.

그의 후회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것뿐이다.

저 때 내가 함께 있었다면, 적어도 저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면, 그 때 함께 바다에 갔더라면, 함께 살았더라면...


때로 그는 꿈을 꾼다. 전처 캐롤이 자신의 옆에 잠들어 있고, 옆방에는 데이비가 자고 있다.

아이가 깬다. 아이는 깰 때 늘 꺄르르 웃는다. 곧 칭얼거릴거고, 곧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아이가 찢어져라 울어대도 그는 결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다.

일어나는 순간 이 꿈이 깨지고 데이비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있을 수 없는 미래를 늘 꿈꾼다.

극 후반부에 데이비는 앞에서 입고 있던 검은 점퍼를 벗고 흰색 후드 차림으로 나와 밝게 자신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교통사고가 나서("그 차에 끌려갔더라면 어쩔 뻔했니") 병원에 입원하고, 거기서 병원 사람들에 동경을 갖게 되어 의사가 되고 싶어져 다시 태어난 것처럼 열심히 공부를 하고, 의사는 되지 못했지만 병원 팀의 일부가 되고, 인정을 받아 더 나은 직업을 갖게 되고, 그러다 우연히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를 다시 만나 자신의 집에 모시고, 죽을 때까지 보살펴주는...


이 미래는 모두 알란이 그려낸 것이다. 그는 말한다. 매일 밤 그 아이가 살 수 있었던 삶을 상상한다고.

그의 상상 속에서 데이비는 알란 자신보다 '열 배는 나은' 사람이다. 자신이 데이비에게 주지 못했던 것(따뜻하고 깨끗한 삶, 안락한 죽음)을 상상 속의 데이비는 기꺼이 준다.

하지만 진짜 데이비는 결코 그런 삶을 살 수 없다. 열 배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지는 모르나, 이제는 가능성이 완전히 닫혀버렸다.

알란은 너무 늦게서야 자신이 잡아주지 못한 아이를 그리워하고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돌릴 수 없으면서도.


그런 그가 유일하게 지금 바꿀 수 있는 것, 그것은 킬롤로지처럼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게임과 컨텐츠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폴은 말한다. 사람들은 게임을 할 때 게임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킬롤로지는 폭력의 결과를 보여주는 도덕적 게임이라고.

알란은 반론한다. 이와 같은 게임은 군인들이 훈련을 하는 것과 같다고. 몸이 기억하게 되면 행하기가 훨씬 쉬워진다고.

폴에게 그는 법정에서 간절하고 또 간절하게 아이들을 보호하자고 외친다. 하지만 누구도 동조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정신병원에 가둔다.

그에게 귀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이기도 한 것 같다.


이렇게 바꿀 수 없는 현실과, 바꿀 수는 있으나 연대할 이 없는 현실의 벽 아래, 알란은 한없이 무력하게 느껴진다.


*


극의 대부분이 독백으로 이루어지는데 세 인물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야기들이 엮이는 느낌이 신선했다.

한 인물의 대사가 다른 인물의 대사에서 반복되거나, 비슷한 상황이 다르게 펼쳐지나, 그런 것도 좋았고.

참 텍스트가 촘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 번이고 곱씹어보고싶어진다.


어릴 적엔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 수록 부모가 된다는 것의 무게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없어진다.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이미 잡아줄 누군가 없는 데이비와 폴이 참 많겠지만, 지금이라도 누군가 그 손을 잡아주길.

그리고 누군가는 알란의 외침에 답해줄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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