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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여행

170413-16 제주 (1)협재, 한림

어느날 아무 생각 없이 피키캐스트를 보다가 뷰가 너무나 아름다운 제주의 숙소를 발견했다.

플래닛 게스트하우스였는데, 예약 미리미리 안해두면 가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거다.

다음날 플래닛게하 블로그에 내가 가능한 일정 두 개를 문의했더니, 둘 중 앞에 날짜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때 묵겠다고 당장 예약을 걸고, 바로 비행기표 수배에 들어갔다.

갈 때는 목요일 반차 내고 네 시쯤 비행기를 타는 거라 아주 쌌다. 오는 건 일요일이니 비쌌지만.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2월쯤 예약해둔 제주 여행을 드디어 다녀오게 되었다.

숙소 하나만 보고 예약한거라 봄꽃이며 코스며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가 주위 사람에게 이것저것 주워듣고 길을 떠났다.

사실 이전까지 해외는 많이 다녔어도 제주는 제대로 한번도 안 가본게, 렌트카가 없으면 못 다닐거라는 생각이 막연히 날 가로막아서.

근데 요즘은 버스로도 많이 다닌다고 하고, 실제로 뚜벅이들도 많아서 용기를 가지고 출발.

이번 주는 유독 벚꽃이 예뻤기 때문에, 제주도 봄꽃이 활짝 폈겠지-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사실 아시아나항공에 안 좋은 추억이 있는 게,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홋카이도 여행을 갔다가 40년만에 폭설로 교통 마비를 겪은 적이 있다.

나도 본래 네 시 비행기로 귀국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아침 9시부터 나가서 기다렸음에도 기차는 운행을 않고 버스도 타려는 사람이 너무나 밀려 있고, 택시를 타려니 혼자라 너무 부담스럽고...

해서 겨우 버스를 타고 공항 도착한 게 이미 다섯 시쯤. 당연히 내가 타려던 비행기는 못 타게 되었고, 다음날 나는 중요한 일정(어쩌면 해피엔딩 프리뷰 공연...)이 있어서 한국을 꼭 들어가야 했기에 발을 동동 구르다, 우연히 아직 닫지 않은 카운터를 발견하게 된다. 그게 아시아나였다.

오늘 출발하냐고 물었더니 한댄다. 그 말만 믿고 가격 상관 않고 일단 귀국하는 표를 샀다. 기나긴 입국수속을 밟고 들어갔다.

여섯 신가 비행기였는데, 이게 밤 11시 20분으로 밀렸다. 일단 오늘 갈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밤 10시 좀 넘어서였나. 갑자기 비행기 오늘 안 뜬단다. 내일 뜬단다. 승객들 전부 ????????? 했음.

처음에는 호텔을 수배해주겠다더니, 그게 어려운지 곧 승객 니들이 알아서 수배하면 돈 준다, 로 바뀌었다가 아예 숙소 얘기 흐지부지.

아니 그럼 최소한 담요라도 주든가... 그런거 하나 제대로 안줘서 코트 덮고 공항 노숙함... ㅂㄷㅂㄷ...

상황이 상황이면 불편은 최소화해줘야지. 물 준대서 가봤더니 한 컵씩 주길래 진짜 장난하는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얼마 있으니 여기서는 밤을 샐 수 없으니 일단 다 나갔다가 내일 다시 입국수속 밟아서 들어오란다. 무조건 나가란다.

옆 항공사 애들은 아예 방송으로 "입국 수속이 너무 불편하니 다시 밟지 않도록 협의를 하겠다"고 하던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어이가 없어서 승객들이 다같이 항의했더니 사무장인지 지점장인지 하는 사람이 짜증내면서 "이미 세 번 얘기해봤지만 또 얘기해보겠다"고 아주 생색을 내는데 참... 죄송한 기색 도꼬...?

다음날도 일처리 가관이어서 최대한 빨리 뜨겠다던 비행기가, 열한시반에는 떴어야 했는데, 두신지 네신지에 뜨고...

미안하다고 상품권이라고 해야하나 하여튼 주긴 했는데, 이딴 일을 겪고 누가 아시아나를 또 타겠냐고.


했는데 내가 또 탔네...^^


근데 이번에도 비행기 연결 때문이라고 30분 지연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앞으로는 타지 말자 정말로...


갑자기 아시아나 불만voc가 됐네........

사실 저 일은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너무 화가 나서, 내가 웬만하면 화내거나 불평하지 않는데, 아시아나 사이트에 진짜 엄청난 장문으로 voc를 남겼더랬다. 근데 voc 글자수 제한 있더만? 만자인가 2만5천자인가... 어쨌든 그거 훌쩍 넘어서 줄이는 데만도 엄청난 고생을 했었는데.

아직도 한번씩 내 가계부 앱에 뜨는 '여행' 항목의 '아시아나 항공권'의 가격을 보면 화가 난단 말이다 ㅂㄷㅂㄷㅂㄷㅂㄷ




3시 55분에 떴어야 하는 비행기가 지연으로 4시 25분에 뜨고, 이래저래 하다보니 제주에 도착한 시각이 이미 여섯 시에 가까웠다.

나의 제주 첫 숙소 플래닛 게스트하우스는 협재에. 제주민속오일장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거기서 뚜벅이의 친구 702를 타고 협재로.

근데 702번을 포함한 시외버스를 탈 때에는 행선지를 먼저 말해야 한다.

내가 정말 아무 대책 없이 갔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모르고 그냥 서울에서 하던 것처럼 버스를 찍었더니 기사 아저씨가 버럭 화를 냈다.

"야! 행선지를 대!" 하고. 그러고도 내가 자리에 앉아있는 걸 거울 통해 보면서 뭐라뭐라 궁시렁거리는 것 같던데.

너무 당황스럽고 불쾌했다. 제주에 대한 첫인상이... 반말로 욕지거리 하는 기사 아저씨라니........

진짜 넘 당황해서 혹시 내릴 때 또 실수할까봐 남들 하는 거 열심히 보고 있었음 ㅠㅠ

방송에서는 자꾸 '하차 시 카드를 꼭 태그하세요' 하는데 사람들 아무도 태그 안하던데 뭘 ㅠㅠㅠ


어햎에서 클레어가 "한림까진 15분이면 될 거야" 하길래 막연하게 한림이 공항에서 안 멀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우 멀었다.


아마 한시간 반쯤 걸린듯.

하긴 클레어랑 올리버는 비행기 말고 자동차 타고 갔지... 빨리 목포-제주간 해저터널이 완공됐으면 좋겠다 ^^...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이미 해가 거의 져가고 있었다.

일단 밥은 먹어야 했기에 협재 해녀의 집으로.




아까 그 702번 기사아저씨의 영향으로 막연히 '제주 사람들은 외지 사람들에게 불친절한가봐'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손님이 좀 적은 애매한 시간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이곳의 아주머니들은 아주 친절하셨다.

해물라면은 만원. 홍합이랑 뭔지 모를 조개랑 꽃게 반 마리, 전복, 딱새우, 소라 등이 들어간다. 얼큰. 마시씀.


제주에 대한 이미지를 조금 회복한 채로 나와보니 이미 사방이 깜깜해서 앞이 보이질 않았다.

초행이라 당연히 길이며 주변 시설도 알 수가 없고.

일단 아까 밥 먹으면서 찾아보니 플래닛 게스트하우스에는 수건이며 세면도구가 아무 것도 비치돼있지 않다고 하길래 편의점에 들러서 급하게 수건이랑 여행용 키트를 하나 샀다. 그리고 지도에 의지해 게스트하우스로 출발.

플래닛 게스트하우스는 조금 낮게 있어서, 잘 보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수 있을듯.




친절한 스탭언니의 도움을 받아 다락방 입성.

나는 다락방이라길래 진짜 다락에 있는 방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아예 도미토리 다락방 카페테리아가 모두 별개의 건물이었다.

화장실은 도미토리 건물에 있고, 다락방은 층고가 아주 낮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키가 작은 나도 무릎을 꿇으면 머리를 쿵 박게 되고,

이곳을 택한 이유인 바다는 깜깜해서 보이질 않으니 처음에는 조금 실망할뻔.


그런데 여기, 아주 조용해서 가만히 있으면 파도소리가 들린다.

나는 불을 끄고 이북리더기로 파도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었다. 페이퍼를 가져간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






그리고 다음날, 나는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마침내 느끼게 된다.


눈 떴는데 이런 광경이라니.






수우동 예약 걸려고 일곱시 좀 전에 일어났는데, 이 광경 보니 눈이 번쩍 뜨여서 얼른 해변으로 나간다.

저만치 아직 달이 걸려 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을 삼보일찍하게 만든다. 조금만 걸으면 이 풍경이 또 다르게 보이고, 다시금 새롭게 아름답고, 또 멋지고...




수우동 예약도 걸었고, 협재의 아름다움에도 잔뜩 감탄했으니, 일단 숙소로 돌아와서 조식을 먹는다.

플래닛 게스트하우스의 조식 시간은 8~9시인데, 8시 40분까지는 가야한다.

수우동 예약을 했음에도 조식을 먹는 이유는, 수우동은 11시부터 먹을 수 있으니까... 나 일찍 일어나서 배고플 것 같으니까.. 준비운동...


플래닛 게스트하우스의 카페테리아는 역시 뷰가 아주 좋다.

창가쪽에 세 자리가 있는데, 먼저 오신 분들이 계셔서 일단 나는 조용히 뒤에 앉아서 먹다가 먼저 오신 분들이 나가셔서 잽싸게 창가로 옮겼다.




이런 뷰를 보면서 생활하는 건 정말 어떤 기분일까.




밥 먹고 다락방의 풍경을 만끽하며 어제부터 읽던 달과6펜스를 읽다가 10시 반쯤 다시 바닷가로 나갔다.

아직 날이 다 밝지 않았던 아침과는 또 다른 풍경.





수우동


그리고 여기는 수우동.

아침에 왔을 때 딱 7시에 적어야되는 줄 알고, 일찍 왔음에도 서성서성하고 있었는데 그냥 종이랑 펜 나와 있으면 쓰면 되는 듯.

어쨌든 내가 11시 타임 두 번째로 예약했었다.

11시 적은 사람들은 10시 55분까지 가 있으면 이름 적은 순서대로 호명해준다.

난 또 혼자 갔고 해서 무난하게 창가자리 겟또☆



나는 모듬튀김과 자작냉우동을 시켰다. 모듬튀김은 금방 나온다.

새우랑 고추, 깻잎, 오뎅, 단호박, 고구마.

튀김옷이 안 두껍고 바삭바삭 맛있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걸려 나온 냉우동.

왼쪽에 있는 저 고명을 으깨서 면과 잘 섞은 후 먹으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왜 '자작' 냉우동인지 궁금했는데. 스스로 만들어서? 자작나무 뭔갈 써서...?(는 절대 아닐듯) 국물이 자작해서.......?

아직 모르겠는데 왠지 나오는 순간 아 국물이 자작해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면이 진짜 쫄~깃쫄깃함. 찰지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구나 단번에 이해가 감.

지금 위에 얹힌 저 계란 튀김도 참 절묘한 반숙이고. 오뎅튀김도 마싯고.

아 먹고싶당...





맛나게 클리어하고 부른 배를 부여잡고 한림공원으로 걸어갔다.

당연히 클레어랑 올리버 생각나서 잡은 코스일 뿐 별 의미 없음.

근데 클레어랑 올리버 생각 나서 어햎 오슷 들으면서 가려고 했는데 아뿔싸, 내가 폰 메인보드 교체하면서 그 노래들이 안 들어있는 걸 깜박하고 와버렸네.

아쉬운대로 올리버가 좋아하는 빌 에반스를 들으면서 걸었다.






한림공원


표지판이 매우 80년대스러워서 조금 놀랍지만... 입장료는 성인 만천원. 티켓에 친절하게 관람 루트도 적혀 있다. 따라가면됨.




4월의 한림공원은 튤립축제.

들어서면 온갖 색상의 튤립꽃들이 활짝 펴 있다. 이렇게 색이 다양한 것도 몰랐고, 이렇게 예쁜 것도 미처 몰랐네.




한림공원 안에는 협재굴이랑 쌍용굴도 있어서 굴 체험도 할 수 있다.

안에 막 올드하게 '이곳을 돌아나오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런 거 있어서 좀 귀여웠음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쌍용굴이 용 두 마리가 빠져나오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쌍용굴이라고 하면서 용 형상 있는 데에 표시를 해 두었는데,

두 번째 용 있는 데서 '여러분은 두 마리 용을 보셨으니 행운이 깃들 겁니다' 이런 거 적혀있었다.

근데 내 앞에 지나가던 커플은 그거 안 보고 지나가길래 ㅋㅋㅋㅋ 아 이걸 유심히 본 나같은 사람에겐 행운이 오겠군! 이라고 생각했음.




이런 석재? 분재? 코너도 있다. 관심은 없어서 걍 훑어만 봄.





그리고 얜 민속촌의 커다란 돌하루방.

민속촌은 술이랑 먹거리를 파는 모양인지 단체관광객들로 떠들썩했다.




지나가다 본 공작새. 새삼 공작새의 풍성하고 화려한 꼬리에 놀람. 명불허전 공작이시다.

그리고 흰 공작새는 정말 너무나도 우아하게 생겼다.




여긴 새 모이 체험장. 큰맘먹고 500원짜리 모이 사서 들어갔는데 새들이 거들떠도 안봄 ^^




키가 큰 야자수들이 바람에 흔들흔들. 참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타조찡. 타조찡이 카메라를 발견하고 내게 다가와주었는데 사진이 10mb 넘는다고 안올라가네...

이 타조는 왠지 좀 애기같았다.

사육사 분이신지 우리 관리해주시는 분이신지가 안에 들어갔을 때 그분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걸 목격.




그리고 이곳은 왕벚꽃동산.

며칠만 더 일찍 왔어도 정말 아름다웠을듯.





지나가다 연못정원에서 뵌 공작님.

공작님이 날아오르셔서 저 연못을 건너셨는데 내 미천한 손이 날아오르시는 모습을 못담았네...


이렇게 한림공원 관람 끝. 관심없는데는 스킵하고 해서 한시간반쯤 관람한 것 같다.

좀 더 걸어서 옆에 있는 금능으뜸원해변으로.



하얀 모래사장이 있는 금능으뜸원해변.

내가 갔을 때는 협재에 비해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와 있는 느낌이었는데, 그리 붐빈다는 느낌도 아니었고 나름 한적했음.



원래 암것도 모르고 위시빈으로 루트 짤 때, 한림공원이니까 한림이랑 가깝겠지~ 하면서 한림 앤트러사이트 이런데를 다음 코스로 잡았었는데, 전날 빈둥거리면서 보니까 그 한림이 그 한림이 아니더라...?

그래서 가지 말까.. 했었는데 한림공원이랑 금능까지 생각보다 금방 봐버려서, 버스 타고 한림 시내로 가기로 결정.


버스 타고 한림 시내 도착한 게 두시 반쯤. 먼저 밥깡패에 대기를 건다.

밥깡패는 세시부터 네 시까지 브레이크타임. 네시에 대기 걸고 싶었는데 종이가 없는 게 대기 다 찼나 해서 4시 40분에 걸었다.

그리고 앤트러사이트로.





앤트러사이트


전분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라고 한다.

옛날식 기계들에 제주 특유의 돌담이 함께 있는 풍경.




나는 드립커피(파나마 에스메랄다였던듯)랑 레몬마들렌을 시켰다.

그러고보니 잔이 테일러커피꺼랑 닮았다.





앤트러사이트에서 책 다 읽고나니 네 시쯤. 4시 40분에 대기 걸었으니 시간이 남을 것 같아서, 올레길 구경이나 할까 하고 일어섰는데 전화가 왔다.

럭키하게도 바로 밥깡패로 가서 밥 먹을 수 있었다. 혼자 다니면 이런 게 좋아.





밥깡패


밥깡패도 일반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라고 했다. 민트민트하다.




내부도 예쁘고. 커튼이랑 어라운드 킨포크 이런 느낌 잘 어울린다.

메뉴에 적힌 안내 멘트는 센스 있고. (바쁘시면 어제 오세요~~^^ 같은 것.)





당연히 여기까지 왔으면 대표 메뉴이자 2인 1메뉴만 가능한 시그니처 메뉴, 해녀파스타를 시켜야지.

전복이 무려 네 마리에 날치알과 문어가 풍성하다.

역시 친절하게 먹는 법을 설명해주고 가신다. 전복은 살아있는 것을 갓 삶은 것이기 때문에 내장까지 먹어도 좋단다.


이게 해물빨만이 아니고 파스타 자체도 참 맛있었다. 거기에 싱싱한 해물까지 더해지니 맛이 없을 수가...



배불리 먹고 올레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서 다시 협재로 돌아가기로 한다.

한림 시내로 올 때는 거리 가늠이 안 되니 버스를 타고 왔지만, 버스 타고 오면서 보니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 같았거든.

중간중간 사진 찍고 길 잃어서 돌아오고 한 것까지 해서 40분이 채 안 걸렸다.


해가 점점 넘어가고 있는 이곳은 한림항.




걸으면서 바다 반대편을 보니, 집들과 오름과 산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참 신기해서.





유채와 바다. 현무암. 비양도. 참 제주스럽다.



협재에 도착.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다정한 조형물을 발견했다.

석양이랑 참 잘 어울리는 문구다.




그리고 협재 해변에서 해넘이 구경. 구름 덕분에 더 장관이었던 것 같다.

어차피 구름 때문에 완전히 넘어가는 건 보이지도 않을 테니 조금만 더 보다 가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한참을 바라봤다.

심지어 이제 진짜 가야지! 하고 발걸음을 떼다가도 멈춰서 다시 해변으로 달려가곤 했으니.





알로하 서재


해넘이를 보고 간 곳은 알로하 서재.

어제 캄캄할 때 떨어져


서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곳인데, 그땐 뭐하는덴지 몰라서 못 들어가봤다가 인터넷 검색해보니 책과 술이 있는 곳이라고 하기에 오늘은 여기다! 하고 정해놨던 곳이다.

숙소에서는 책과 밤바다 풍경은 있어도 술은 안되니까...(카페테리아에서는 되지만)




들어가자마자 밀실로. 운이 좋게도 아무도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가 보이고, 커튼을 열고 들어와 안쪽에는 이렇게 '밀실'이 있다.

밀실 인테리어 보고 너무 감명받아서 이사 가면 방 하나를 이렇게 꾸미고 싶다고 생각했다.



첫잔은 민트줄렙.

뭔가 제주에 어울릴만한, 내가 먹어보지 못했던 그런 칵테일을 고르고 싶었다.

대충 설명보고 시켰는데 아... 나는 위스키 베이스는 맞지 않나봐.....

그래도 얼음으로 열심히 희석시켜서 마셨다.


처음 고른 책은 '언어의 온도'. 우리말로 된 소설이나 에세이 같은 건 말이 참 예뻐서 좋다.

'언어의 온도'는 작가의 생각을 볼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글맛, 글의 온도를 중요시하는 작가의 따뜻한 글을 접할 수 있어 더 좋았다.



기분 좋아서 한 잔 더. 두번째 잔은 무난하게 맥주로. 그래도 알던 맥주 아니고 모르던 맥주 시킴.
하날레이 시켰는데 정말정말정말정~말 맛있었다. 꽃냄새 상큼한 냄새 잔뜩. 자주 먹고싶당...

그리고 두 번째 책으로는 또 에세이를 하나 집어들었다가 영 느낌이 아니어서 덮고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을.
고등학생 시절에 에쿠니 가오리를 참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가복제의 느낌이 너무 강해져서 읽지 않는 작가가 되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던 초기의 작품이, 혹은 그 작품을 좋아하던 그때의 내가 궁금해져서 최근에 '호텔 선인장'을 다시 읽었고, 그런 맥락에서 제주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을 골라보았다.
책 속에서 내가 아까 마신 민트 줄렙이 등장해서 반갑고 묘한 기분.


열 시 마감이라 9시 40분쯤 나섰다. 몇 분이 바 자리에서 책을 읽고 계셨다.

참 조용하고 소중한 공간이었다.


기분은 좋고 제주는 아름답고.

숙소 들어가기 전에 다시 밤바다를 한 바퀴.

제주도의 밤은 푸르지 않았다. 아주 까맸지.

어제는 그 어둠 속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서 무서웠는데 하루 돌았다고 어느새 어젠 보이지 않던 낭만이 흘러넘쳤다.

청춘들은 불꽃을 튀겨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