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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책

흑백

지금 도전중인 미미여사 에도 시리즈 중에 가장 인상깊게 읽었음.


친척의 집에 하녀살이를 겸해서 들어간 소녀가 다양한 사람들의 기이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겪었던 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치유해나가며, 다른 사람들까지 치유해주는 이야기.

다른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가 네 개 나오고, 이 네 가지에 등장한 인물들이 다섯 번째 이야기에서 연결되며 하나의 사건이 풀려나간다.


이렇게 써놓으니 무슨 탐정물같지만...

흑백이 좋았던 이유는 사람들의 심리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그걸 통해 독자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고 귀양살이를 하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않았지만, 바로 그 가족이 자신을 원망함을 느끼고 목숨을 던진 형.

생명의 은인의 집에 맡겨져 '아들이나 다름 없'지만 결코 아들은 될 수 없는 선을 느껴왔던, 그러면서도 분수를 알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가질 수 없는 과분한 것을 자꾸 눈앞에 흔들어대는 주변인들을 견뎌야만 했던, 그러다 마침내 폭발해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한 마쓰타로.

친남매로 태어났으나 멀리 떨어져 살다가 장성하여 만나게 되자 얄궂게도 남녀간의 사랑을 느끼게 되어, 그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무고한 여인의 혼을 빼앗고 끝내는 죽어버린 남매.


이들의 죄는 당연히 흑이다. 그러나 그 주변인들은, 피해자들은 정말 순수한 백인가?

특히 마쓰타로의 이야기에서 이 점을 크게 느꼈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가.

그러나 주변 사람들도, 마쓰타로에게 희미한 연정을 품고 있던 오치카마저도 그걸 알지 못했다.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그의 마음도 자기들의 것인양 그것을 멋대로 건드리고 주물렀다.

'피해자와 가족들'이라는 이름을 떼어놓고 보아도 정말 새하얀 빛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오치카의 숙부가 말했듯, 무엇이 백이고 무엇이 흑인지는 사실 아주 애매한 것이다.

물론 흑을 미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백이 정말 혼자 있어도 순수한 백인지, 아니면 흑 옆에 있기 때문에 그나마 백으로 보일 뿐인지 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완전히 물들어가기 전에 그것을 잡아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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