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명견만리 인구, 경제, 북한, 의료 편을 읽고 유익하다고 생각돼서 당장 두 번째 책도 읽게 되었다.
윤리편은 착한 소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달콤창고, 서스펜디드 커피,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은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경제 활동을 한다고 배워왔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심지어 서스펜디드 커피는 그리스가 국가 부도 위기를 겪던 시기에 생겨난 것이라니.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갖거나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한다는 속성도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인간은 그동안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경쟁이 유발한 문제들을 직시하고 그것을 반성하는 동시에, 이타심이라는 본성을 발현시킨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최후 통첩 시험'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움직임은 개인의 양심이나 이타심을 충족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업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소비자들은 기업의 '착한 가치'를 보고 그 기업의 물건을 택한다. 기업들은 분명히 거기서 영향을 받는다.
양상은 좀 다르지만 우리나라에도 그런 경우가 분명 있는 것 같다. 남양의 대리점 밀어내기 행태에 분노한 네티즌들의 불매운동 같은 것들.
이렇듯 소비자의 선택은 유권자의 한 표와도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중요한 것은 나 하나부터가 타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가지는 것일 테다.
이 감상은 뒤에 나오는 인공지능의 미래로 이어진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미래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일본에는 실제로 종업원 전부가 인공지능인 호텔이 있다고 한다.
많은 인간들이 인공지능에 밀려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에 대해 명견만리 측에서 내놓는 답은 '인간의 선한 의지'이다. 효율성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생각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뒤에서 던져지는 '플랫폼 시대'나 미래사회, 교육 등의 주제를 읽으면서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중국 주제에서는 주링허우 세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1990년대에 태어난 그들은 중국 인구의 15%를 차지하며 자유분방한 사고 방식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의 창업 열기는 대단하다. 젊은이들의 열정도 열정이지만, 80년대생 선배들이 90년대생 청년들을 이끌어주고, 70년대생들은 8, 90년대생들을 모두 아우르는 역할을 해준다거나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 젊은 창업가들이 자원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 등이 그 열정을 든든히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라별 창업 실패 횟수를 보면 중국은 2.8회다. 한 번 실패하더라도 두 번은 더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있다는 말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창업 실패횟수는 1.3회이다. 한 번 창업에 실패하면 끝이라는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이는 또 뒤에 나오는 교육 화두와 연결된다. 익히 알고 있듯, 우리나라의 교육은 주입식이다. 대학에서도 그건 달라지지 않는다.
책에 나오듯, 서울대에서도 최고 학점을 받는다는 학생들의 공부 방법을 물어봤더니 대부분이 교수님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받아 적는 것이며, 자신과 교수의 생각이 다를 때는 교수의 생각대로 답안을 작성해야 한다고 많은 학생들이 답변하는 현실이다.
나 역시 크게 공감하는 현실이다. 대학 시절 들은 한 강의에서 교수님은 특정 역사적 인물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성향이 있었다. 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모두 그걸 알고 있었다. 나도 그랬고. 나는 실제로는 그 역사적 인물을 높게 평가하지 않으나, 시험 답안지에는 수업 시간에 누누이 들어왔던대로 그 인물에 대한 좋은 평가를 적절히 섞어 답을 써냈다. 그 인물에 대한 나의 생각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으니 길게 생각해서 답을 쓸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시험 시간을 한 20분쯤 남기고 답을 내고 강의실을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시험에서 A를 받았다.
결국 대학이라는 곳이 암기식 교육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으며, 단지 졸업장을 통해 더 나은 곳에 취직을 하기 위한 '취업사관학교'라 조롱받는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내내 그런 교육을 받아왔다. 선생님의 질문에는 정해진 답을 해야 하므로, 틀린 답을 말할까봐 질문에 손을 들고 답하는 일이 점점 두렵다. 심지어는 손을 들고 질문을 하거나 답을 하는 학생들을 은근히 '나댄다'고 유난스럽게 생각하기까지 한다.
풀이 과정이야 어떻든 최종 답이 틀려버리면 의미가 없다. 이는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했든 성적표에 적힌 등수로만 아이와 이야기하는 부모의 시선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수험생들은 특히나 말 그대로 '문제 푸는 기계'이다. 많은 기출 문제를 풀고, 문제 유형을 외워버리거나 심지어는 그 문제 혹은 지문 자체를 통째로 외워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원어민도 시를 쓴 시인 자신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풀 수는 있으나 스스로 그런 외국어 단어를 사용해 대화를 하거나 그 시를 읽고 무엇을 느꼈는지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들 그랬던 적이 있을 것이다. 문학 문제를 풀 때, 분명히 내가 느낀 것은 이래서 2번을 답으로 골랐는데 답안지는 4번이 답으로 나와 있다. 그러면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외워야 한다. 혹시라도 그 문제가 다음에 또 나오면 4번을 답으로 골라야 하니까.
이러니 평균적으로는 수학을 잘 하는 한국 학생들이지만 수포자 비율은 높을 수밖에 없다. 공부가 즐거울 수가 없다.
수능을 치고 나왔을 때의 허무함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제2외국어까지 치고 나온 터라 학교 운동장이 깜깜했다. 사람은 적었고.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내가 이 하루를 위해 12년을 공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2년동안 내가 뭘 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철학 시험을 꼭 치러야 하고, 시험 다음날에는 해당 연도의 문제가 신문에 발표되어 온 국민이 그 주제로 토론하기를 즐긴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프랑스의 수험생들은 나처럼 허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처럼 가답안을 맞춰보며 12년간의 노력이 등급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 어느 대학쯤에 지원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얘기하며 또 배워나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테니.
공부한 지 1~2년이 지나면 다 까먹어버리는 우리의 교육과는 달리, 이들의 교육은 평생동안 잊을 수 없는 어떤 것을 이들에게 주는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 같은 것 말이다.
이들의 교육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국민을 길러내는 것이 목적인 것 같다.
그럼 우리나라의 교육은? 이미 만들어진 답과 틀에 스스로를 최대한 잘 구겨넣을 수 있는 순종적인 국민을 만드는 것이 목적인가?
어쨌든 이러한 교육을 받아온 우리에게 '창의성'이라느니 '소프트웨어의 중요성' 등을 아무리 강조해봤자 그게 어디서 갑자기 샘솟아나올 수 있을 턱이 없다. 더더군다나 사회적 지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러니 우리 청년들에게는 선택지가 줄어들 수밖에. 그래서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고, 대기업 입사 시험장에 바글대며 몰려들 수밖에.
결국 미래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가장 먼저 교육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의성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주고 도전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라는 물을 주어야 청년들이 쑥쑥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은 알지만 그게 어떻게 이슈가 되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슈들에 대해 짧은 시간에 시원시원하게 알려주는 책이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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