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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영화

나는 부정한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역사적 사실들이 있다. 나치독일 하, 아우슈비츠의 수많은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갔다는 것은 대다수가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의 시작점이 바로 거기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반대편의 학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이다.

영국에서는 고소를 당한 자가 자신의 무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고소를 당한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 측은 '유대인 학살은 존재했다'는 명제를 증명해내야 한다.

법정은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는 자리가 되어버렸고, 대다수가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사실이 법정 앞에 끄집어내어진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데보라 교수가 '민폐캐'로 느껴졌다.

변호측이 경험에 의한 논리적 작전을 제시하는데도 본인의 감정을 앞세우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떼를 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호사 리처드를 신뢰하게 되면서 그런 모습은 사라진다.

아마 그녀는 스스로 깨달았을 것이다.

변호측은 냉철하고 승리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떨어져 이 사건을 보고 있다는 것을.
리처드가 말했듯, '자기부정'을 통해 객관적으로 이 사건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자기부정'이라는 게 참 중요한데 뜻대로 되지는 않는 일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도, 초반부에서 나는 생각했다.

'가스실? 학살? 당연히 있었지. 유적도 있고... 증거도 증언도... 아무튼 있었어.'

당연하다, 이러한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이 대체 몇이나 있겠는가. (내 주변에 어빙 같은 자가 없는 것도 천만다행이고)

하지만 상대가 잘못된 근거를 바탕으로 반론을 제기해온다면?

나는 그 근거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까? 상대의 궤변을 지적할 수 있을까? 혹시 그 궤변에 미혹되지는 않을까?


감정에 치우쳐 무언가를 판단하고 쉽게 휩쓸리는 경향이 있다.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일수록 '자기부정'이 필요할 것이다. 한 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무언가를 보고 판단을 내릴 시간이.

그리고 그것은 결코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행동이 아니다.


데보라를 찾아왔던 수용소의 생존자 역시 처음에는 자신들을 증언대에 세우지 않는다는 사실에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지만,

결과가 나오고 나서 데보라의 기자회견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당신들의 목소리가 전해졌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던가.

목소리는 감정적으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사실에 근거해 전해질 때, 그 목소리는 더욱 더 멀리 퍼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는 말 대신에 때론 그 '당연한 것'에 거리를 두고 생각해볼 수 있는 태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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