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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를 좋아하지만, 지나간 영화들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영화를 한 번 틀면 중간에 끊거나 하지 않고 쭉 봐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집에서는 영화를 잘 보지 않는 탓이기도 하다. 빔프로젝터를 사면서 많이 나아졌지만.

어쨌든 오늘은 벼르고 벼르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드디어 인생 처음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제서야 이런 가르침을 받게 된 자신이 너무 안타까웠다.


영화 속 키팅 선생의 가르침 '카르페 디엠'은 이제 너무나도 유명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키팅 선생이 '전통적'인 교육법이 아닌 자신만의 교육법으로 아이들을 하나하나 깨우면서 말해주는 '카르페 디엠'은 그 울림이 너무나도 달랐다.

특히 선생님의 그 말에, 사진 속 흘러간 옛 인물들의 목소리로 말해주는 'Carpe Diem' 'Sieze the day'에 흔들리는 아이들의 눈빛.

영화의 첫 시작에서 볼 수 있듯 학교는 아주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다. 이 아이들 각자는 자신이 아닌 부모가 원하는 목표에 맞추어 살아가고 있으며, 부모에게 반항이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토드처럼 아주 훌륭한 형의 그림자에 가리워져 평생을 살아와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든지. 그런 아이들이 처음으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라는 말을 듣는다. 부모나 남들의 시선 속의 자신이 아닌, 바로 너 자신의 인생을 말이다. 이 아이들 평생에 누가 그런 말을 해주었을까? '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라는 말을 듣고 평생을 살아온 아이들에게 키팅 선생의 말이 가지고 왔을 충격은 새가 태어나면서 알을 깨는 충격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아이들은 키팅 선생의 가르침에 감화되어간다. 점점 자신의 인생을 찾기 시작한다.

스터디 클럽을 만들어 삼각함수 같은 것을 착실히 공부하던 아이들은 이제 모여 시를 읽고, 시의 정수를 빨아들인다.

키팅 선생은 말했다. "의학,법률,경제,기술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와 미, 사랑, 낭만은 삶의 목적인거야."

그러니까 이제 아이들은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녹스는 사랑을 찾는다. 찰스는 장난을 치고, 자유로운 삶을 찾는다. 닐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연극임을 알고 그것에 도전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던 닐은, 그러나 당연히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그것도 연극 바로 전날.

닐의 집안은 그렇게 부유하지 않다. 닐의 아버지는 많은 것을 희생하여 명문 웰튼에 닐을 입학시키고 그에게 의사가 되어야만 한다며 길을 강요한다.

키팅 선생은 연극 전에 아버지와 대화를 하라고 한다.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말한 것처럼 말하라고 한다. 연극에 대한 네 열정을 보여주라고.

닐은 더 쉬운 길이 없냐고 묻는다. 그리고 연극 전까지 아버지와 대화를 하지 못했지만, 키팅 선생에게는 대화를 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리고 연극 공연날. 닐은 정말 잘한다. 모두가 그에게 환호한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의 '퍽'을 맡은 닐은 마지막 대사를 하며 아버지의 눈을 바라본다. 아마도 닐의 진심과 통할 만한 대사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연극이 끝나자마자 닐을 끌고 집으로 간다. 그리고 웰튼을 자퇴하고 군사 학교에 가라고 강제한다.

닐은 이때 아마도 난생 처음으로, 거세게 아버지에게 반발한다.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 들어보라고.

하지만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라는 말로 얼버무려버린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닐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아버지에게 대들지 말아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누구보다 키팅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했던 닐이지만, 가족이라는 굴레는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연극에서 잘했다고, 정말 잘 했다고 중얼거리는 닐의 말에 어머니는 역시 가서 자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닐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닐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지 않았다.


방으로 돌아가 퍽의 왕관을 쓰고 한참 있던 닐은 그것을 창가에 내려둔 채 아버지의 서재로 가 총을 꺼내어 자살한다.

아버지가 닐을 찾을 때 들어간 방에 놓여 있던 퍽의 왕관. 마치 닐이 정말 '한여름밤의 꿈'처럼, 신비로운 요정처럼 그대로 사라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여름밤의 꿈. 이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열정, 진짜 자신은 그저 한여름밤의 꿈처럼 짧게 나타났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것이었나보다. 그래서 차라리 그것들과 함께 사라져버렸나보다. 





아이들은 닐의 부고를 전달받는다. 눈이 내리는 바깥으로 나가고, 닐의 룸메이트였던 토드는 눈밭에 토하곤 눈밭 너머로 비척거리며 달려간다. 소리를 지른다. 묘하게 러브레터의 설원 장면과 겹쳐져보였다.

더 안타깝게도 닐의 부모는 닐의 죽음의 원인으로 키팅 선생을 지목한다. 학교측도 찰스의 신문 사건 때부터 벼르고 있던 그 '죽은 시인의 사회'가 다시 회자되자 옳다꾸나하고 아이들을 하나씩 불러 키팅 선생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서류에 사인을 하게 만든다. 사인을 하지 않으면 퇴학시키겠다는 협박과 함께.

참 '어른다운' 짓이다. 전통, 규율, 이런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한다. 그리고 '너를 제도권 밖으로 쫓아내버리겠다. 도태시켜버리겠다' 따위를 가장 무시무시한 협박 수단으로 삼는다.

키팅 선생의 수업 중에 아이들을 교정에서 걸어보게 하는 것이 있었다. 획일화의 무서움을 가르쳐주면서 그는 자기 자신만의 방식대로 걸으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가르침에 아주 훌륭히 대비되는 어른들 아닌가!


결국 아이들은 그 서류에 사인을 한다. (찰리는 퇴학당하지만) 키팅 선생은 모든 책임을 지고 학교를 떠나게 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칠판 앞에서 라틴어를 읊기만 하던 동료 교사는 이제 아이들과 교정으로 나가 직접 본 것들을 단어로 알려준다.

이렇게 동료 교사에게도 울림을 준 그이지만, 살아 숨쉬는 것보다는 죽은 전통을 원하는 이들 때문에 떠나야 한다.


이제 영어 시간에는 새로운 (임시) 교사가 들어오고, 키팅 선생의 첫 수업 시간에 모두 찢어버린 서문을 읽으라고 한다. 아이들 모두가 그 페이지를 찢어버렸다고 하니, 자신의 책을 주면서까지 읽으라고 한다. 참 정해진 커리큘럼에 충실한 분이다.

두고 간 물건을 가지러 이 교실에 들른 키팅 선생을 보며, 토드는 자신들은 억지로 그 서류에 사인을 했다고 한다.

토드는 전설적인 형의 후광에 가려져 있던 아이이다. 처음부터 누군가의 앞에서 낭송을 한다거나 하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 닐이 연극 때문에 들떠있을 때,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 앞선 걱정을 했다. 그런 그의 안에서 키팅 선생은 시를 끌어냈다. 네 삶도 하나의 시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닐의 인생을 바꾸어둔 것이다.

이때쯤 (임시) 교사는 다시 '어른스러운' 협박을 한다. 한 마디만 더 소리치면 퇴학시키겠다고.

그래서 토드는 소리치지 않는다. 책상 위로 올라선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른 관점에서 보기 위해 책상 위에 올라가보라던 키팅 선생의 가르침.

항상 그 가르침을 잊지 않겠다는 무언의 외침이었으며, 무엇보다 늘 순종적이던 토드가 가장 먼저 책상 위에 올라섰다는 것에서 이미 키팅 선생의 가르침은 앎을 넘어 아이들의 삶 속에 깊이 배어들고 있다는 것이 깊이 와닿았다.



이 영화가 1989년에 개봉했으니 거의 30년 전 영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키튼 선생의 가르침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아직까지도 아주 중요한 교훈이기 때문임과 동시에, 그닥 변하지 않은 교육 체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 역시 남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소중한 수업을 들은 기분이었다.


여담이지만, 내가 서양 사람들 얼굴을 구분을 잘 못하는데(그래서 영화 보면서도 찰리랑 녹스가 그렇게 헷갈렸음), 그래서 토드 보면서 자꾸 아 누구 닮았는데..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다가 후반부에야 헐 에단호크?! 했음.

최근에 본 게 '보이후드'의 근육질 수염 아빠의 모습인지라 모습의 괴리가 더욱더 크게 느껴졌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 옛날은 다 무상하니 역시 오늘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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