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책을 읽으면서 잘 우는 편은 아니다. 영화라면 몰라도.
그런데 펼 때마다 주룩주룩 울게 하는 책이 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다.
진짜 한번은 날 좋은 가을에 공원에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들고 나갔다가, 너무 눈물이 쏟아져서 그만 집으로 돌아와버린 적이 있을 정도다.
고향에서 아버지와 함께 생일을 맞으러 올라온 엄마를 서울역에서 잃어버린다.
그러나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가족들은 이미, 자신들은 엄마라는 인간을 오래 전에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정말 짧게 요약하면 이게 다인데, 가족들 한명 한명이 떠올리는 엄마의 모습을 따라가며 나는 저게 내 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울컥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첫 장이 그렇다. 첫 장은 소설가인 딸의 이야기이다.
특이하게도 이 장에서는 '나는'도 '그녀는'도 아닌 '너는'이라는 2인칭을 줄곧 사용한다.
더더욱 흠칫하게 되는 대목이다. 마치 나를 향한 힐문 같다. 너는 왜 엄마를 잃어버렸냐고 조용히 묻는.
엄마의 이름은 '박소녀'이다.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만드는 전단지에 그 이름이 나온다.
그 이름을 잃고 수십 년을 그저 '엄마'로만, 형철이 엄마 하는 이름으로만 살아왔을 엄마의 이름이 '소녀'다.
이제는 입을 수 없지만 사실은 프릴 달린 원피스를 좋아하는, 어렸을 적이 있고 오빠가 있으며 그 오빠에게 여느 여동생처럼 어리광 부리며 매달리는, 문창호에 가을 낙엽을 넣는 감수성을 가진,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엄마'라는 이름 아래에 쳐박아놓았기 때문에 그녀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놀랍게 여기는, 그런 여인의 이름이 '소녀'라니.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엄마는 항상 거기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무엇보다 강해야하고, 누구보다 힘이 세어야 한다. 엄마는 한 명의 인간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런 상징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그래서 이 책 속의 가족들은, 그리고 나는 엄마가 아프다는 것도, 늙어간다는 것도, 엄마에게는 어린 시절이 있다는 것도 깡그리 무시한다.
책 속에 어릴 적부터 알러지가 있어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준 무명옷이 아니면 입을 수가 없는 남자가 나온다.
그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옷장을 열어보니 남자가 평생 입을 수 있는 무명옷들이 쌓여 있었단다.
그런 남자에게 작가인 딸은 무심코 '어머니가 기쁘셨을까요?' 해 버린다.
그 말에 남자는 '우리 어머니는 요즘 여자들과는 다른 분이에요.' 하며 모독당한 감정을 드러낸다.
그 감정의 빛깔이 '신성모독'이라는 것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인간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이름의 신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엄마'라는 상징 속에 갇힌 엄마는, 그러나 그것을 혼자서 묵묵히 버텨낸다.
가족들의 따스함 대신 모피코트에 얼굴을 묻고 위로를 받아야 하는 외로운 엄마. '박소녀'를 자신조차 잃어버린 엄마.
그 엄마는 자신 대신 자식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아들이 검사가 되기를 바랐고, 딸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장미 묵주가 가지고 싶다고. 너는 어디든 자유로이 갈 수 있지 않느냐고.
엄마라는 자리에 묶여버린 여인이 바라는 아주 작은 자유가 왠지 서글펐다.
한 마리 새가 되어 자신의 일생을, 살아온 순간순간을, 삶의 터전을, 누구도 몰랐던 작은 비밀을, 차례차례 돌아본 엄마는 자신의 엄마의 품에 상처투성이 발을 하고 안긴다. 평생을 엄마가 필요했다고 하며.
그리고 소설가인 딸은 바티칸에서 엄마가 갖고싶다고 했던 장미 묵주를 사고, 피에타 상을 바라본다.
인류를 구원한 예수가 원죄 없이 태어난 동정녀의 품에 안겨 있지만, 그 장면은 성화가 아니라 그저 차가운 아들의 몸을 무릎에 뉘인 한 어머니의 모습일 뿐이다. 신의 아들, 대리자가 아니라 한 명의 아들로, 인간으로 그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예수.
그 모습에서 딸은 아마 엄마를 겹쳐 보지 않았을까. 지금껏 '엄마'라는 이름으로 신격화되어 왔으나 사라진 후에야 그녀도 한 명의 소녀였고 인간이었음을.
사실 어떻게 보자면 엄마라는 존재가 전형적인, 구시대적인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세상에 저런 엄마가 어딨어'라고 누군가는 말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시대와 함께 모습이 조금 변했을 뿐이지, 엄마라는 존재가 되기 위해 겪는 고통과 희생, 그리고 그 숭고함은 변하지 않는다.
어렸을 땐 엄마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 수록 두려워진다. 그 위대함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그렇게 울게 되나보다. 우리 엄마를, 나를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보게 되어서.
- 엄마 얘기 해봐.
- 엄마 얘기?
- 응... 너만 알고 있는 엄마 얘기.
- 이름 박소녀. 생년월일 1938년 7월 24일. 용모 흰머리가 많이 섞인 짧은 퍼머머리, 광대뼈 튀어나옴, 하늘색 셔츠에 흰 재킷, 베이지색 주름치마를 입었음. 잃어버린 장소...
큰딸애가 너를 향해 실눈을 떴다가 졸음에 떠밀리며 다시 눈을 감네.
- 엄마를 모르겠어.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것밖에는. (209p.)
엄마가 파란 슬리퍼에 움푹 파인 내 발등을 들여다보네. 내 발등은 푹 파인 상처 속으로 뼈가 드러나 보이네. 엄마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지네. 저 얼굴은 내가 죽은 아이를 낳았을 때 장롱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네. 내 새끼. 엄마가 양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25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