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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전시

마리로랑생전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중인 <마리로랑생展 : 색채의 황홀>을 보고 왔다.


사실 마리 로랑생은 잘 알지 못하는 작가이고, 여러 작품들을 모아둔 전시 같은 데서 한두 점 본 게 다였다.

처음 그녀의 그림을 접했을 때에는 그 몽환적인 색채에 적응이 되지 않았는데, 볼수록 그 부드러움에 끌렸던 기억이 있었다.


전시는 마리 로랑생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사건을 기점으로 다섯 개 시기의 작품들을 묶어서 보여주는 방식이다.

그녀의 인생이 매우 드라마틱했던만큼, 그림들에서 보여지는 변화도 바로 눈에 보일 정도로 극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세계대전의 발발로 망명 다니던 시기의 그녀의 작품들이 매우 인상깊었다.

무일푼으로 고국에서 쫓겨나고, 사랑하는 이가 사망하는 절망을 겪던 시절, 그녀의 작품은 온통 회색빛이 그득하다.

그러나 그런 음울한 색채 속에서도 푸른색과 분홍색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림을 보거나 오디오 가이드를 듣기 전에는 단지 그녀가 '여성' 작가이기 때문에 그러한 파스텔의 부드러운 색상을 사랑했던 게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푸른빛과 분홍빛은 희망, 특히 분홍은 고국인 프랑스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파란색을 세련된 색이라고 생각해서 일생 사랑하고 많이 사용했다고 했는데,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 하녀를 그린 그림이었다.

그 하녀는 마리 로랑생을 속여 그녀를 외부와 고립되게 하고 결국은 그녀의 신뢰를 얻어 양녀까지 되었다고 한다.

이 스토리를 들으면서 마리 로랑생이 그린 그 하녀, 온화하고 다정한 얼굴에 아름다운 파란 옷을 입은 그녀의 그림을 보면 마리 로랑생이 정말 그 하녀를 얼마나 신뢰했는지가 보여서 씁쓸한 것이다.


망명기 이후에는 고국으로 돌아온 그녀가 예술가로서 화려한 명성을 얻으며 자리를 잡는 섹션이 펼쳐지고, 그 섹션에서는 말 그대로 황홀하게 만연한 색채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전 섹션에서의 음울함과는 놀랍도록 비교되는 찬란함이었다.


마리 로랑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그녀의 생애를 따라가며 충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녀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참 좋은 전시였다.